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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문중 알림글, 종친 경조사, 일가동정 등
 
작성일 : 14-04-03 15:17
[자료] 기황후 헌다식 축사.강연 내용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120  
3.21일 기황후 헌다식 축사.강연 내용입니다.  참조바랍니다.
 
○ 개최배경 : 최석환(한국 국제선차문화연구회장)
   기황후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황후이지만 차사에 백장청규를 있게한
   큰 어른이며 한류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9월 중국 백향사에서 국제선차대회에서 오늘의 의미를 부여해서 중국땅에서
   기황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학술대회가 열릴것 같습니다.
   이번 기황후 헌다례를 춘분을 선택한 것도 춘분은 만물이 소생하는 날이고 기황후께서
   입적.출생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보름에 계획 했다가 날씨관계로 오늘 춘분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춘분날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멀리까지 와 주셔서 기황후 공덕을 나누게 되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 헌시 황후(奇皇后)에 대한 헌시  박정진 시인
   고려(高麗)의 암사슴
   인고의 세월에도
   몽골 대초원에서
   탁월(卓越)한 뿔 세웠네
   그 이름 기황후(奇皇后)
 
   공녀(貢女)로 갔다가
   궁녀(宮女)가 되고 끝내
   순황제(順皇帝)의 황후가 된 집념의 일생
   솔롱고 올제이 후투그
   보현숙성황후(普賢淑聖皇后)
 
   누가 그 슬픔을 알까
   누가 그 섬섬옥수에 숨겨진
   하루하루 사생결단의 도전을 알까
   당찬 고려여인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한 많은 여인의 이를 깨문 영광을! 누가 알까
 
   멀리 고국의 최남단
   제주에서 아들을 빌고 빌어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 아유르시리다르를
   왕(昭宗)으로 만들어
   제국의 석양의 영광을 누렸네.
 
   오직 몸 하나로
   청춘을 이국(異國)에서 불사른
  그 아름다움 진달래처럼 붉다
  제국을 호령하다 죽을 때는 고향을 찾은
  한마리 귀촉도(歸蜀道)여
 
  고려의 한(恨)과
  안식(安息)이 함께 누워있는 무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연천(漣川)의 무덤
  오늘, 만물이 소생하는 춘분(春分)
  봄기운이 새싹마저 돋우려고 하네
 
  대제국의 가녀린 한 몸으로 거뜬히 받아낸 황후여!
  우리 그대 이름을 못난 조국의 빛나는 뿔로 기억하리라.
  우리 그대 이름을 평화를 사랑한 민족의 부활로 기억하리라.
  오늘 아름다운 차 한잔으로 안식하소서
  오늘 아름다운 차 한잔으로 승청하소서,
 
○ 축사 : 강신원 단장(연천군 민원모니터리단)
  오늘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흡족합니다.
  저는 기황후의 성과 이름이 뜨오르기 전에 기황후님의 역사책 이조실록, 동국여지지에서
  기황후님의 내용을 읽고 이분의 묘소가 연천 읍지에서 나와있듯이 15리 내지 20여리
  북쪽방향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황후는 30년동안 순제를 모셨습니다.
  제주도에 탑을 세워서 절을 세워서 무수히 축원을 해서 아들 순종 낳고
  (북원의 황제) 북원을 창건해서 20년동안 통치했을 때에도 기황후님은 역할을 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아들에게 유언을 하기를 고향 연천에 묻어달라 했습니다
  역사책에는 분명히 묘소라고 적혀있습니다. 분명히 재궁동이라 적혀있고..
  여기가 묘소였습니다
  그때 당시 고려말 때이니 얼마나 훌륭하게 장식 했겠습니까?
  그러나 원나라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세워지면서 역사는 항시 승리자의
  것이기 때문에 이씨조선에 들어와서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기황후의 모든 것을
  없애버렸습니다.
  오늘날 제일 강대국이였던 마지막 몽고의 황후의 능이 이렇게 초라하게 있다는 자체가
  연천군민의 한사람으로서 2년전에 연천군에 기황후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기황후님은 한류의 원조이며 연천의 브랜드, 우리민족의 긍지.명예입니다.
  기황후님은 화엄경을 증축할 때에 고용보님이 자정원 원사(지금의 한국은행 총재)로
  있을때 그분으로 백만장을 투척하고 고려 공녀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또한 입성론이 대두했을 때 그때 고려가 입성되었다면 지금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하나의 성으로 불과했을겁니다. 절대 반대했습니다.
  80년동안 있었던 공녀제도를 그때 폐지 했어요. 고려에서 올라오는 곡물을 절대적으로
  삭감시켰습니다.
  오늘날 빨리 기씨문중 어르신 및 차문화 단체에서 이렇게 거대하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치루워질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기씨문중의 뜨거운 관심과 열정으로, 차문화 단체라든가, 연천 군청에서
  오시고 문화재로 지정 되었습니만
  오늘을 기점으로 충분히 예산으로 유적지를 멋지게 만들어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인사말 : 기노성 (행주기씨대종중 이사)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가 2000년도 1월 14일에 여기를 왔었습니다.저희 종중에서는 그동안 신경을 못썼습니다.
  와서 보니까 이자리가 저렇게 잡목. 칡넝쿨이 덮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오신 한송(기연도)과 같이 이렇게 두었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으로 찾아와서
  벌초도 하고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많은 도굴을 당했습니다. 일제때에 5트럭을 파갔다고 하며 6.25때는 소련에서
  두트럭을 파갔다고 동네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많은 유물들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한송하고 같이 이곳을 매년 벌초도 하고 5년전에는 이곳에 잔디를 가져와서 입혔습니다.
  그당시 연천 문화원에서도 문화재지역을 회손해서는 안된다하여 현행범으로 몰렸습니다.
  앞으로도 이런날을 기억하시고 참석하시고 종중에서도 많은 신경을 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연 : 허흥식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저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허흥식입니다.
  오늘 뜻깊은 자리에서 날씨도 청명하고 여러 가지 행사가 규범있게. 특히 차단체라든지
  차문화 여러분께서 기황후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드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최근 방송되고 있는 기황후. 이런 문제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역사가 외곡되어
  있어 중요한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05년 이자리에 처음 왔었는데 그때는 철재로 여기에 안내판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왜 이렇게 더 회손 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2009년 몽골아카데미 학술원에서 오신 책매드 교수가 우리 연구원에 와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제가 지도 교수였습니다.
  같이 2008년에 여기와서 답사를 했고 2009년에 논문을 썼는데 저 앞에 웅덩이에서
  석인이 나왔는데 몽골의 석인과 똑 같았습니다.
  제가 2011년 몽골에가서 현지에서 대조를 했습니다.
  마주보이는 산 서쪽으로 가면 몽골 황후를 모셨던 정승들의 무덤 마정승, 이정승 이라고
  두기가 있습니다.
  여기는 많이 회손이 되었습니다만 본래 몽고 황제는 무덤을 평묘를 했습니다.
  징기스칸 묘도 석인만 멀리 있고 여기는 규모가 적기 때문에 여기 있지만
  몽골같으면 30리 앞에 석인을 세웠습니다.
 
  기씨들에게 누가될지 칭찬이 될지 모르겠지만 기황후라는 사극이 나오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드라마에 꼭 기황후가 나오는데 기황후가 몽골로 가는 과정,
  공녀라고 나오는데 어느 역사책을 봐도 공녀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사실 공녀라는 말은 뒤에 조선시대에 와서 역사가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이고
  기황후가 미천하다고 하는데 원나라 황실의 대대적으로 웅비라트 황후를 배출하던
  가문이 아니라는 것이지 기황후가 미천하다는 말이 전혀아닙니다.
  행주기씨는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보다 많은 더 많은 재상을 내었고    
  기황후보다 100년 이전에도 재상들이 많이 나왔고 대단한 집안이였습니다
  근데 미천하게 되어있고 마치 침략군이 와서 여자를 약탈하는 공녀를 끌고가고
  사극이 나오고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대우받아야 할 역사를 우리 스스로 나쁘게
  쓰는 것입니다.
  기씨에 대해서도 몹시 나쁘게 쓰고 기씨들이 기황후를 말하는 것을 전에는 싫어 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기씨에는 결려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 습니다만 고려 출신으로 공녀출신으로
  어린 13살~ 16살 귀족자제들만 선발해 갔지. 아무나 간것이 아닙니다.
  가서도 황궁에서 봉건체계처럼 왕으로 봉해진 사람들. 그자녀들 하고만 결혼 했습니다
  이때에 간 사람은 대부분 황제도 나왔지만 제상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외에 환관이나 천인으로 갔습니다만 천인인 환관의 고용보 도움을 받아서
  기황후가 출세한 처럼 되어 있는데 이건 아주 거꾸로 되어 있어요.
  고용보는 기황후 때문에 도운일도 있지만. 기황후 때문에 출세한 환관.천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황후로서 기황후만 배출된 것으로 아는데 기황후 앞서 왕현의 딸
  왕황후도 한분 있고 광산김씨 김심이라고 딸(김주정의 손녀딸)도 황후가 되었고
  패정제 부인이 되었고 왕형의 부인은 인종황후가 되었고 물론 제1황후가 아닌경우도
  있습니다만 왕황후 김황후 다음에 기황후 나왔습니다
  기황후가 낳으신 소종의 황후는 노책이라고 노황후라고 한분 계십니다.
  그런데 기황후의 오빠하고 노책(소종의 황후)의 권력이 커지니 공민왕이 제거를 했지요.
  그래서 기씨가 상당히 많이 몰락했지요.
  조선시대에도 행주기씨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사극은 어려운데 에서 연극에선 개천에서 용이 나야 재미있지만 너무 잘못되고 있어요.
  우리가 사극을 엉터리로 만들면 일반사람들이 다 믿거든요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보니 금강산 장안사에 기황후가 황태자를 낳고서 그곳에 장극각비를 세우고
  김황후(김심의 딸) 춘천 청평사에 장경비를 그보다 앞서 세웠습니다.
  우리는 기황후만 말하는데 고려에서 황후가 4사람있습니다.
  그리고 소종의 아들은 권씨하고 결혼하고 황제로 등극했는지. 그 아버지 이름이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만 제가 조사하고 잇습니다.
  4황후는 확실히 찾았고 우리나라 역사는 너무 연구가 안되었고
  제가 보면 안타깝고 한때 기씨는 한동안은 기황후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렇게
  총명한 황후는 드뭅니다.
  김심이나 광산김씨나 이런분들은 고려에서도 계속 우대를 해서 묘지를 남기고 했는데
  기씨들은 오빠이신 기철 분들같은 형제들이 훌륭한 분들 다 제거되고
  몽골에 있던 형제들.족하들이 이런사람들이 고려에 이렇게 하려고 했지요
 
  기황후의 생몰연 불확실한데 1320년 난 것으로 14세인 1333년에 가서
  순제가 황제에 오르고 다음해부터 그때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다른 황후들도 총애를 받았습니다. 기황후는 본래 총명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안목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병서도 많이 읽고 불교에 독실한 심신을 가졌고..
 
  왜  여기가 기황후의 무덤이라고 해야 하는가. 여러가지 유물이 나왔지만
  또 하나는 멀리 않는 곳에 회암사 가보면 지공화상비가 있고 나홍화상비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북원 1377년.1378년.그러니까 대도(원나라 수도)가 함락되고 나서
  무려 18년후에 여기에 삼강연호라고 북원연호를 사용합니다.
  북원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북원연호를 사용한 자료가 2개 그곳에 있고
  개성은 북쪽에 있고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중간에 기황후 묘소를 쓸수 없으니
  1378년까지 생존하신 것으로 지금 고증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연구원 첵메드 박사는 몽고 아카데미 교수로 있고 울란바토르 대학 교수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분이 학위논문에서 이런 삼강연호를 조사하고 학위논문 조사해서
  2010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원나라는 세계를 경영한 팍스 몽골리카를 세운 나라입니다.
  잘아는 바와 같이 로마라든지. 아랍제국. 그후 몽골제국. 스페인. 이스파냐. 네델란드.
  영국 팍스브리탄, 팍스 소비에트. 팍스 아메리카 시대 아닙니까.
  그때 팍스 몽골리카 시대가 종교적으로도 가장 관대했고 세계경영의 상당한 시사점을
  보여주는 테러 같은 것이 적었던 시대입니다
 
  팍스 몽골리카. 고려가 몽고와 혼인동맹을 맺어 고려가 세계경영에 동참했다고
  이런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몽굴 간섭.몽골 압제등 너무 치사하고
  더럽게 써있어서 역사를 확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기씨들도 역사를 잘 쓰는데 협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천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이곳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자랑뿐 아니라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입니다
  여기가 지금 봉문이 없고 민묘들이 잔뜩 있는데 몽고는 평묘로 했습니다.
  지금도 땅속에 유물이 보존되어 있으니까 긍지를 가지고..
  마정승 이정승 또 회암사. 이곳은 개성에서 명나라 사신이 거치지 않는 지역으로
  배후지에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기황후가 59세로 환갑을 넘기전에 돌아가셨는데. 그전에는 명나라군사에서 쳐들어와서
  돌아가셨다고 엉터리로 말하는데  북성사기 책에 보면 1371년까지 건재했고 그뒤
  소종을 도와 북원을 20여년을 건강하게 북원을 이끌고 고려와도 교류해서 삼강연호를
  사용하게 하고 뒷받침을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몽골 문화원에서 오신분 계십니까?  몽골 아카데미에도 연락을 했습니다.
  올해는 어렵고 다음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회암사를 중심으로 국제 학술대회도 해야하고 할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전에 경기문화재단. 사실 경기도의 자랑도 아니고 국가적인 세계적인 자랑거리인데
  우리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가꿔주겠습니까
 
  기씨들이 참석하시고 또 여러 가지 준비하시고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 날씨도 갑자기 어제까지 추웠으나 하도 훌륭하고 영광되는 날이라
  하늘도 기뻐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강연 : 기우탁 위원(유교문화 연구소)
  행주 기씨 대종중의 일원으로 오늘 뜻 깊은 이 자리에서 영광스럽게도
  기황후에 대한 커멘트를 하도록 기회를 주신 주최측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기황후는 세계 제국인 대원제국의 황후로 우리 민족의 존재를
  과시 했다고 알고 있으며 몽골족이 아닌 사람이 거기에까지 지위를 이르러게
  되었음은 후세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세계화 시대'리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세대에서도 우리 사람들이 세계속에서 크 역할을 하고 있는 이의
  예를 들자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있는가 하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
  얼마전에 작고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예가 될수 있겠습니다
  이를 역사속에서도 우리가 살펴 볼수도 있습니다.
  멀리는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서역을 대장정한 고 선지 장군이
  있는가 하면, 신라시대에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해, '황소격문'이란
  훌륭한 명문을 써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고운 최치원 선생, 그 다음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기황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황후 얘기를 들어가기 전 잠간 그 배경으로 역사적인 년대 개념이
  필요할 곳 같습니다.
  애기의 내용은 서기 1330년으로부터 1370년에 이르는 40년간에
  이르는 기황후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는
  10대 원 순제가 황제로 등극한 2년전이 되며 고려는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 30대 충정왕 그리고 31대 공민왕대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기황후의 생애는 처음 원나라에 건너 갈 때는 貢女(공녀)로 갔으나
  궁녀에서 황후, 그것도 제2에서 제1로 이르기까지 처절한 권력 투쟁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운명을 바꾼 입지전적인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천한 공녀 신분, 거기에다 원나라의 제도상으로는 몽고족이
  아니면 황후가 될 수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했다고 하는 것은
  뛰어난 미모도 미모이려니와 능숙한 다도의 행실, 그리고 권력의지적 두뇌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대원제국에 대한 역사적 연원입니다.
  당시의 동북아 정세는 걸안족 여진족 말갈족 등 수많은 부족국들이 먹히고
  먹는 살벌한 상황이었는데 몽고족인 징기스칸이 1206년 통일을 이루었으며,
  1260년에는 그의 손자 쿠빌라이가 서방공략으로 칸 제국들을 건설했으며
  1270년에는 중원을 장악하여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동서를 아우르는
  세계제국인 원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 이전 1230년부터 그들은 동방공략으로
  고려를 정복했던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쓰라린 굴종의 시기이었고
  이것이 그 이후 100년 이상의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기황후가  군임하던 그 시절은 대원제국의
  마지막, 황혼기에 접어든 때 라는 것입니다. 1368년은 주 원장의 명나라 건국과
  더불어 원나라는 중국의 한민족에게 중원을 넘겨주고 200년간 융성했던
  대원제국은 종언을 고하고 북쪽을 퇴각하던 정권 교체기라는 점입니다.
  국망의 시절을 맞아 그 뒷마무리를 잘 처리한 황후의 능수능란한 극복의
  모습은 매우 대견해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황후의 친정인 고려조 역시 그로부터
  24년 후인 1392년에 망하고 조선조가 건국하던 때입니다. 대륙도 한반도도
  모두 한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시기였습니다. 왜 이러한 말을
  하느냐 하면, 한번 가정을 해 봅시다. 만약 원나라가 몇 십년 계속되고
  고려조가 더 계속되었다면 동북아에 있어서 기황후의 역할은 또 어떠했을까요?
  적어도 친정국가인 고려국가의 위상은 더 높아 질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기황후는 1330년경에(년령 16세) 중국으로 건너가 곧 바로 궁녀로 픽업되어
  원나라 왕실 (1332년 順帝의 등극)과 인연을 맺었으며 1339년에 제 2황후로
  책봉되고 1365년에 제1황후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368년 주 원장의 명나라의 등장으로 중국의 중원인 大都(대도)를 물려주고
  북으로 퇴각함으로써 대도시대를 끝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1368년 순제의 붕어(죽음)를 맞게되고 그의 아들 昭宗(소종)이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기황후가 권좌에 있은 기간이
  30년 정도이었는데 그 기간중 그의 치적은 무엇이며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선 기황후 시대에는 끊임엇이 제기되던 원의 고려 入省論(입성론)이
  끊어졌으며 고려 여인의 공녀 문제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의 문물이 원나라에 유입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구한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인두. 고려병과(떡), 고려문양 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밖에 치마저고리등도 유행했다고 합니다.
  전래에 의하면 제주도의 조랑말은 그 기원이 기 황후의 주선에 의해 원나라에서
  도입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원나라 말기 기근으로 인한 20만의 아사자들의
  매장등 구호사업뿐아니라 석경사 보수등 여러사업을 기황후가 이룬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광석 14-04-04 10:54
 
이번기회에 역사를 많이배움니다. 이글올려주신 운영진에게 감사드리고..mbc기황후홈피에 이글도 올렷으면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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