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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3 11:19
연천으로 가는 길(펌)
 글쓴이 : 기회근
조회 : 2,723  
이번 답사(踏査)의 화두(話頭)는 역사(歷史)의 부침(浮沈)이다.
역사 하면 역사적 진실(眞實)이 떠오르고, 역사성 하면 인류(人類)가 창출(創出)한 지성(知性)이 다가온다.
역사는 과거를 조망(眺望)하고 현재를 진단(診斷)하며,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 갇혀 버리는 역사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갖은 추측과 때론 억측(臆測)으로 역사의 씨줄을 꿴다.

연천읍 상리 재궁동에 자리잡은 황우총 자리.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국( )이 의외로 협소하다.
울제이카투의 영정. KBS 역사스페셜 팀이 몽골화가에게 부탁해서 그린 기황후의 모습이다

연천으로 가야 하는 까닭은 참으로 소중한 역사의 흔적이 전해오는 탓이다.
이름하여 기황후의 무덤이라는 ‘황후총(皇后塚)’
기황후(奇皇后)가 누군가? 팍스몽골리카 원제국(元帝國)의 마지막 황제,
그러나 실은 초원(草原)의 고향으로 물러가 북원(北元) 시대를 열었던 순제(順帝)의 황후를 가리킨다.
원제국이 팍스몽골리카를 경영(經營)하던 당시 공녀(貢女)로 끌려간 비운의 고려 여성.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원 제국의 황후가 된 불세출(不世出)의 여걸(女傑)이다.
바로 그녀가 연천에 영면(永眠)하고 있다는 게다.

기씨녀(奇氏女)는 행주(幸州) 기씨(奇氏) 자오(子敖)의 막내딸로, 1333년 14세 때 원(元) 황실(皇室)에 들어가 차(茶) 따르는 궁녀(宮女)가 되었다.
미모(美貌)가 출중(出衆)하고 영민(英敏)해서 순제의 총애(寵愛)를 받던 중 1339년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 猶識理 , 『행주기씨족보』 에는 憂猷識理達臘이라 기록했다)를 낳고 우여곡절 끝에 제 2황후로 책봉되었다.
당시 몽골인은 몽골족을 으뜸으로 하고, 이슬람인을 2등급, 고려인을 3등급, 그리고 송나라 사람을 4등급으로 나눴는데, 3등급에 속하는 고려인을 황후로 봉한다는 것은 ‘몽골족이 아니면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는 칭기스칸의 율법을 깬 파격이었다.
어찌 반대가 없었으며, 중상과 모략(謀略)이 없었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1365년 정후(正后)가 죽자 전례(前例)를 깨고 정후로 책봉(冊封)되었다.
이름하여 ‘완자홀도(完子忽都)’, 몽골 발음으로 ‘울제이쿠투’ 이다.
10명의 황후를 기록한『원사(元史)』 「후비 열전」 의 진술이다.

이러한 원의 황후가 연천에 영면하고 있다?
사학계의 핫이슈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조선 영조(英祖) 때 간행된『동국여지승람』연천현조에 ‘연천현 동북쪽 15리에 원나라 순제 기황후의 묘와 석인, 석양, 석물 등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밭을 갈고 소를 기르는 곳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99년 간행된『연천현읍지』 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좀더 구체적이다.
‘황후총은 동쪽 20리 재궁동(齋宮洞)에 있는데, 세속에서 전하길 원 순제 기황후가 고국에 돌아가 묻히기를 원해서 이곳에 장사 지냈다고 한다.
우선‘ 재궁동’ 이라는 지명이 그렇고, 기황후의 유언도 구체적이다. 재궁이란 능이나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니, 재궁동은 재궁이 있는 동네라는 말이다. 고총의 주인이 예삿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니, 기록으로 보자면 기황후릉이라 불러야 옳다.

연천문화원은 1995년 지표조사를 했는데, 황후총 주변에서 나뒹구는 석물(石物) 2기를 수습하여 문화원 뜰 앞에 세워놓았다.
게다가 토기나 청자편도 자주 발견된다니, 『동국여지승람』 과『연천현읍지』 의 기록이 헛말이 아님을 알겠다.

기황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는『원사』 와『고려사』 의 시각인데, 승리자인 명과 새 왕조를 세운 조선의 이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하물며 무덤쯤이야 오죽했으랴?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 두 번이나 도굴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으니, 지금은 작은 언덕배기로 잊혀져 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세월의 무상만이 대지를 뒤덮은 칡덩굴이 달래고 있으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천 사람들은 이곳을 기황후릉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정혈(正穴)을 건드리지 않고 주위에 무덤을 써 고총(古塚)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석물 2기 중 하나는 목이 잘려있어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다행히도 1기는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석물의 모양이나 크기가 새롭다.
구부리고 앉은 모양은 마치 12지신상의 하나인 원숭이와도 같고, 얼굴 표현이나 크기만으로 보자면 동자상이 완연하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한 형태가 아닌가 한다.

아무튼 전설적 담론으로는 기황후릉인데, 연천 땅에 영면했다는 기록이 당시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원나라 말기는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정치 사회적 혼란기가 계속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황하유역에서 기병한 홍건적의 난이다.
주원장이 이끄는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원의 수도 북경으로 쳐들어오자, 1368년 7월 순제와 기황후는 북경을 철수한다.
사가들은 이를 두고 원제국의 멸망이라지만 실은 북원(北元)의 개막이요, 남북조(明과 北元) 시대의 또 다른 시작이며, 다시 진정한 고향, 초원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북순사기(北循私記)』 에 의하면, 순제는 황후와 황족 일행을 데리고 상도와 응창을 거쳐 하라호름으로 간다.
『북순사기』 는 신하 유길이 도피하는 황제를 수행하며 17개월 동안 쓴 책이라는데, 아쉽게도 기황후의 최후가 보이질 않는다.
다만 하라호름에 이르러 순제는 나라에 관한 모든 권한을 황태자에게 이양한 뒤 세상을 떠난다는 데까지 기록했다. 황태자는 기황후 소생인 아이유시리다라이며, 『원사』 는 소제(昭帝)라 적고 있다.

광활한 초원 위로 시간의 켜가 쌓이고, 그 켜의 알 수 없는 인연이 연천 땅으로 나를 불러 기황후를 생각게 한다.
“고국에 돌아가 묻히기를 원했다.” 는『연천현읍지』 의 기록대로 과연 기황후는 고향에 묻혔을까?
아니라고 부정할 까닭도 없지만 과연 그 멀고 먼 하라호름에서 흥안령을 넘어 만주를 지나고 연천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다.
혹 유골이나마 수습하여 귀환했을 수도 있다.
칭기스칸 군대가 서역을 공략할 때 전사자가 생기면 반드시 주검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보내는 몽골인의 정서를 감안할 때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기황후를 추종하던 고려 출신 환관이 상당히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탓에 이런 상상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추론에 가깝다.
혹시 기황후릉이라 불리는 고총이 원이 건재했을 당시 조성된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기황후 직계존비속과 관련된 무덤으로 말이다.
이런 가능성은 ‘기황후 어머니 묘일 것’ 이라는『동국여지지』 의 기록과도 부합된다.

황제(순제)의 부인이자 황제(소제)의 어머니였던 기황후, 원제국 100 여년사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30여 년 동안 제국을 호령했던 여걸.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오늘날 팍스아메리카의 영부인보다도 더한 권위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여인이 바로 기황후다.
그동안의 부정적 평가를 털어버리고, 아니 선입관을 갖지 말고 당대의 세계질서를 보자.
남녀를 막론하고 이만한 사람이 우리 역사에 있었는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후기의 역사가 비록 자랑스러운 것은 아닐지라도 당시의 세계 정세에서 그나마 망국(亡國)하지 않고 왕조를 지켰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
이런 시대에 그녀가 제국과 세계를 쥐락펴락했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다.
그 중 하나가 기황후릉이라는 고총을 발굴하는 일이다.
정부나 관계기관의 주도적인 역할이 새삼 요구된다.

연천을 떠나면서 기황후에 대한 조명의 필요성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기황후에 대한 기씨 문중의 애정과 자긍적인 의욕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한 문중의 일이 아니라 한국사를 다시 쓰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경경위사( 緯史)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5년 수습하여 연천문화원 뜰에 세운 석물. 숙수(石 )인지 석인(石人)인지 따져 볼 일이다.

장장식(경희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민속학) 현 국립민속박물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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