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대입 체력장 검사를 경기상고 던가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경복궁 뒤에 있는 학교에서 할때 나는 손창민을 보았다.
아역배우 이메지에서 강수연하고 주연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는 성인배우로 느낌이 바뀌였고..
집사람이 볼 때 가끔 보던 한국비디오에서는 오래간만에 불량주부로 나왔다.
그냥 20여년전이 생각났지만 별로 변한 모습 같지는 않았다.
분장 때문일까? 86년 에이시언 개임할 때 kbs 방송국에서 자원봉사 겸 중개방송보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본 연기자들이 조명의 강렬함에 얼굴 타는 것을 방지하려고 얼굴에 분장이라기 보다는 떡칠을 한 모습을 자주 보아서 연기자들의 tv 모습이 진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창민은 그대로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연예뉴스를 보니 손창민이 신돈역을 한단다.
손창민, MBC '신돈' 주연 캐스팅
2005-06-29 09:55
불량주부의 손창민이 MBC 대하드라마 '신돈'(극본 정하연,연출 김진민)의 주인공 신돈으로 캐스팅됐다.
'신돈'은 '제5공화국'에 이어 9월부터 방송될 예정인 60부작 드라마로, MBC가 올해 10대 기획 중 하나로 추진하는 대작 드라마. 박종화의 소설 '다정불심'을 원작으로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사랑, 신돈과 공민왕의 개혁 등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대하 사극이다.
손창민은 때로는 '요승'으로, 때로는 기울어가는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거인'으로 평가 받으며 고려말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대대적인 개혁을 펼쳤던 신화적인 인물 신돈 역을 맡았다.
'신돈'의 기획을 맡은 MBC 드라마국 정운현 부국장은 "'요승'의 부정적 이미지로 알려진 신돈을 개혁가로 재조명하고자 한다"면서 "손창민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이를 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돈의 도움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공민왕 역에는 정보석이 내정됐다.
'신돈'은 오는 8월초부터 약 100억원이 투입된 용인 오픈세트장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며, 중국 로케이션도 추진되고 있다.
신돈!
공민왕!
이사람들은 우리 기가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기가가 입은 5번의 화중에서 1356년 기황후가족을 숙청한 병진참화와 1371년 신돈을 숙청한 신해참화로 두번의 큰 참화를 우리는 공민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기가가 오늘날 이렇게 적은 인원인 원인도 이 공민 때문이기도 하다. 대종중자료 중에서는 공민을 변태라고 표현한 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후에 변태 짓을 해서 자다가 암살되기도 했고 아들 우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아들 신씨라고 이성계가 주장하는 명분을 주었지만 이때도 변태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좋게 보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기황후 가족의 숙청은 잘 알려진 것이고 원나라 공주가 죽고 변태는 신돈에게 정사를 맞기며 신돈을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한다고 했지만 백성의 신망을 얻은 신돈에게 위협을 느낀 변태는 역모로 숙청한다. 이때 최측근으로 신돈이 봉선사에서 환속할 때 개경의 집에서 유숙시키며 돌봐준 사람이 지금 거의 모든 기씨의 조상인 7세 현 할아버지이다.
현 할아버지는 신돈보다 먼저 다섯째 아들 기중수 할아버지와 같이 끌려가 고문 끝에 죽었기 때문에 신해참화기록에는 제일먼저 나온다. 기현, 기중수, 최사원 정구한 등등등..
한달 후에 큰아들 기중평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동생이 죽으며 연좌되어 죽고 나머지 기중제, 기중민, 기중리(기숙윤이라고 나오지만 이 세분 중에 어느분이 기숙윤인지는 모르겠다)등의 형제는 다시 한달 후에 죽임을 당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당연히 역적의 가족으로 찍혀 노비가 되었을 것이다. 사건후 1년후인 1372년 기록을 보니 가물이 들자 왕태후가 이는 당연히 신돈 등의 저주이니 나머지 연루된 가족을 사면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변태가 다 사면했지만 오직 신돈의 처첩들은 사면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신돈의 업적은 20년후 이성계일파가 조선을 세우는 명분으로 가져가고 신돈은 요승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혀 오늘날까지 우리 기가는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라고 이 신해참화를 잘 언급도 안한다. 씨족사를 소개해도 기황후 가족의 숙청인 병진참화만 강조하고 그 병진참화로 침체된 우리 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분으로 정무공을 중흥조라고 세우지만 실상은 정무공 할아버지는 병진참화로 침체가 아니라 신해참화로 침체된 가문을 다시 중흥하신 분이다.
정무공의 증조부가 기현 할아버지시니까. 큰아들 기중평 할아버지가 정무공의 할아버지시고...
그런데 실제로 기현 할아버지를 옆에서 도운 정치적 실세는 오형제중에 다섯째 지평공 기중수 할아버지이신 것으로 보인다. 기현 할아버지와 같이 끌려가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장인인 김원명(金元命)은 변태에게 신돈을 소개시켜 6년간의 권력을 잡게한 사람이니 신돈도 자기를 알아준 사람의 사위를 우대했을 것이며 또한 기중수할아버지의 아들 다섯 중에서 넷째 기질 할아버지의 장인은 유명한 황희 정승이다. 황희와 사돈 간이라는 것이다.
기현 할아버지는 60대에 돌아가신 것으로 나오니 큰 아들 기중평 할아버지는 40대쯤 되셨을 테고 형제간의 나이 차이를 2살로 치더라도 다섯째 아들 기중수 할아버지는 30대 초반으로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기중수할아버지의 아들 5형제는 큰아들이 10살정도로 보아야 하고 사건이 나던 1371년 그때는 결혼을 아직 안했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후에 역적으로 죽은 사람의 아들을 황희정승이 사위로 삼았다면 이 것이 정상인가? 이사건이 진짜 역모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이 신해참화는 그냥 변태가 일으킨 정치사건의 희생이라고 보면된다. 이 후로 큰아들 기중평 할아버지의 장남 면 할아버지는 조선왕조를 따라 개경에서 서울 청파동으로 이사하여 정무공의 호를 딴 동네이름 청파동의 유래를 낳고 행주기씨의 대종을 이루는 도승지공, 참판공(장성문중), 별좌공, 덕성군(광주문중), 복제공문중을 이룬다. 나머지 기중민 할아버지의 후손 등은 개경부근 황해도 금천, 재령 등지에서 해서문중의 대종을 이룬다. 다섯째 지평공 기중수 할아버지의 5형제의 후손은 개성부근 황해도 지역에 살며 일부가 임진강을 건너와 파주 송촌지역에 살고 경남 합천에도 살며 다섯째 아들 분 할아버지는 조선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태종 때에 참판을 지냈다. 분할아버지의 넷째 손녀사위는 이효조이신데 이분은 충무공 이순신의 고조부이다. 다시 말하며 충무공의 고조모는 행주기씨이다. 이순신장군은 서울에서 출생하여 아산으로 이주한 것을 보면 고조모의 친정인 분할아버지의 후손은 대략 15세기 이때까지 서울에 사신듯 한데 15세기말에서 16세기 초쯤에 구례로 이거하여 살며 일부는 지리산 너머 경남하동으로도 가고 기택룡 할아버지 같은 경우는 난리(아마도 임진란)을 피해 곡성으로 이주했고, 일부는 나주로 이주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기현 할아버지와 그 다섯 아드님들을 역사적으로 사면하려는 노력이 별로없다.
양성이씨홈피(
http://www.yangsung.or.kr/)에서는 이때 연좌되어 죽은 이춘부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올려 놓고 신돈에 대한 이성계일파의 왜곡을 밝히고 있다.
아무조록 손창민이 신돈역을 잘 하여서 삐뚤어진 고정 관념을 없애주길 바란다.
그런데 기가의 사위인 정보석씨가 기가의 최대원수 변태역을 한다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그분도 혹시 기현할아버지의 아들 기중제 할아버지의 손녀사위로 현감을 지내신 광주정씨 정이충(鄭以忠)님의 후손은 아니신가 의심도 한다. 그럼 현할아버지의 외손이 원수역을 한다는 것이 된다.
광주정씨 정종환님이 이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도 스펨이 많이 올라와서 회원가입후에만 글을 올릴수 있게 했더니 이런 댓글도 올리기 힘든 부작용이 나타나는 군요. 이해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정씨인 정종환입니다.
행주기씨 게시판에 정보석씨에 대한 내용이 있어 확인해 본 결과
정보석의 부인은 기민정씨이고 행주기씨의 사위인 정이충의 후손이 맞습니다.
게시판은 회원이 아니면 쓸 수가 없기에 이렇게 메일로 보냅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