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홈페이지를 우연히 들렸더니 정무공에 관한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정다산선생이 상산록(象山錄)에 기록된 글을 통해 옛 관리들의 청렴을 다음과 같이 3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했다. 오늘날의 기준과는 사뭇 다른 것도 있음을 느끼지만 당시의 생활상과 도덕심, 인정의 정도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 여러 일가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1등급은 나라에서 주는 봉록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설사 먹다 남은 것이 있어도 개인이 착복하지 않는 자다. 대표적인 인물로 행주기씨로 기건(奇虔)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가 연안부사로 있을 때 고을의 명물인 붕어를 입에 대지 않았고, 또 제주 목사로 있을 때 그 고을 명물인 전복을 따는 백성들의 고충을 보고 입에 대지 않은 것은 그것이 봉록이외의 것이요, 또 그 명물이 민폐의 근원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등급은 봉록 이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되 부정한 것이면 먹지 않으며, 먹다 남은 것이 있으면 집으로 보내는 자다.
3등급은 이미 선례가 서 있는 것은 비록 부정이라도 먹되, 아직 선례가 서 있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먼저 시작하지 않는 자로 구분하고 있다. 선례가 된 부정한 것이 오늘날의 판단으로 의심이 가지만 생활이 빈곤해도 인정이 넘쳤던 당시를 감안하면 납득이 되기도 하다.
이러한 것은 다음의 고사(故事)를 보면 알수 있다.
조선조 성종이 어느 날 6명의 승지를 모아두고 "만약 지방의 수령이 그 지방의 특산물을 선물로 보낸다면 관례로 있는 경우로 보고서 받겠는가?"하고 물었다.
여러 승지들은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하고 답하는데 유일하게 좌승지만은 땅에 엎드리면서
"신은 그러지못합니다. 아흔 살 노모가 계시는데 전부터 잘아는 수령이 해물을 신에게 보내었기로 신이 받아왔습니다"했다.
위의 1등급이 곧 청백리요. 3등급은 염리(廉吏:청렴한 관리)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