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로그인 상태 유지
 
 
 ※ 불건전한 언어(비방, 속어 등) 사용시 별도공간으로 임의 이동됩니다.
 
작성일 : 07-01-18 09:46
김용옥의 강의중에서
 글쓴이 : 기회근
조회 : 3,309  
우리는 누구인가-MBC도올특강-제11강: 王이냐 臣이냐?

도올 김용옥의 MBC특강 제11강: 王이냐 臣이냐? 2004/03/15

정 도전은 일종의 신권(臣權)정치, 즉 유교이념으로 무장된 엘리트 신하집단이 통치의 주체세력이 되는 정치형태를 지향했다. 고려말 사회가 워낙 썩었으니까 뜻있는 사람들, 신진 유림이 생겼다. 고려말은 정도전, 정몽주, 권근 등의 탁월한 대석학들이 많은 사회였다. 격동기에 인물들이 많이 태어난다. 정도전은 당시의 지식인들을 대변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신하들의 합리적인 상식에 의해서 국가가 운영되기를 바랐다.


왕 한 사람이 모든 걸 지배하는 사회에는 항상 문제성이 노출되었다. 정도전 같은 탁월한 신하가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신권정치가 가능했을 것이나, 그의 구상은 너무 과격했다. 왕권을 극도로 제한했다. 중앙집권적 절대왕정(Absolute Monarchy)의 화신인 이방원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은 누가 했는데 왕권을 무시하고 신권을 달라고 하느냐?”였던 것이다.



이 방원은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왕권의 집중을 강조했다. 그 정도가 좀 지나쳤다. 그는 왕권을 제약할 수 있는 요소들은 모조리 죽였다. 이방원이 만큼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은 없다. 자기 형제, 처남 4명도 죽였다. 자기의 사돈 심은은 세종 즉위 초 영의정이었으나 권세를 부리자 가차 없이 사사되었다. 그러나 이방원의 피의 숙청과 왕권의 강화 속에서만 성군 세종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방원의 가차 없는 숙청 때문에 세종은 성군정치를 펼 수 있었고, 세종 등극 이후는 군말이 없었다. 성균관 학자들도 꼼짝 못하고 순종했다.


항 상 위대한 성군은 뒤끝이 나쁘다. 세종, 세조 때의 명신들은 대부분 정도전을 신봉한 권근(權近) 밑에서 배출되었다. 따라서 이들 대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도전의 틀대로 갔던 것이다. 조선조의 2대성군은 세종과 정조다. 정조는 대학자였으며 세종을 능가할 정도였다. 또 정치가였다. 세종 이후에 정치가 문란 해졌고, 정조 후에도 정치가 문란 해졌다. 완벽한 왕은 자기만으로 끝난다. 고도의 학식을 소유한 성군이었지만 신권에 다시 눌려 당대의 영화스러운 모습을 계승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만개한 후 스러지는 꽃과 같았다.


조 선왕조의 역사는 신권과 왕권의 시소(See-Saw)게임이다. 문종(세종의 맏아들)은 세종 때 한글창제에 주도자가 되었다. 대학자였다. 세종의 아들 중에 가장 문장이 뛰어났었다. 문종은 등극 전에 공부만 했다. 결과로 문약해서 등극한 후 2년 3개월 만에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단종이 계승했으나 정치권력은 김종서, 황보인에게 집중되고 또 다시 신권이 강화되었다.


조 선왕조를 단순한 왕권의 역사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정도전이 왕권을 제약한 이래로 왕은 함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제도 속에 묶여 있었다. 세조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단종을 빙자해서 공신, 신하들을 모조리 쫓아낸다. 세조(수양대군)의 아들은 병약했다. 예종은 등극한 후 1년 2개월 만에 죽는다. 사람들은 세조가 단종을 죽인 업보라고 생각했다.


성 종은 세조의 손자였다. 성종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성종주변에는 그를 압박하는 권신(Clown)들이 비교적 적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림들이 많이 정치에 진출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문물은 세종 때 시작이 되어 반석을 다졌고, 그 반석위에 집을 지은 임금은 성종이었다. 성종(1469-1494, 25년간 즉위)의 치세기간에 조선왕조의 문물제도가 완성되었다.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삼국사적요> <동문선> <오례의> <악학궤범> 등이 모두 성종 때 편찬되었다.


성 종은 공부를 좋아하고 베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선비들을 끌어 모았다. 영남의 골수 성리학자들이 대거 진출했다. 이때 사림(士林)이라는 것이 형성된다. 영남사림의 거두 김종직(金宗直:1431~1492) 등 문신을 가까이 하면서 권신들을 견제했다. 다시 성종대왕의 신권이 강화되었다. 임사홍, 유자광을 유배시키고 신진세력들의 진로를 열어주었다. 성종은 끼가 있는 왕이었다. 말년에 가면 밤에 미복으로 궁궐 바깥으로 나가 로맨스도 벌렸다. 여기에서 성종비, 윤씨의 질투가 생겨 왕의 얼굴에 흠집을 내고 해서 폐비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이 연산군이다.


조 선 초기에 사림(士林)이라는 말과 훈구파(勳舊派)라는 말이 나오는데, 훈구파란 세조의 찬위를 도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공신 집단, 훈국공신(勳國功臣)을 말한다. 이들은 정도전 계열이다. 이들에 대항하는 세력이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사림(士林)이다. 혁명가 정도전의 개혁세력도 권력을 잡으면 기득권자가 되고 훈구세력이 되었다. 이들 기득권자는 보수 세력으로 전락했다. 개혁세력도 기득권자가 되면 보수 세력으로 전락한다.


김 종직(1431~1492): 경상도 밀양출신의 사림파 거두. 항우(項羽)가 초나라의 의제(義帝)를 폐한 것을 단종에 비유해서. 단종을 조위하는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연산군 때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났다.


폐 비 윤씨의 아들인 연산군은 두 개의 사화를 일으켰다. 사화란 “사림이 화를 입는다.” 는 의미이다. 무오사화만 사초(史草)가 발단이었기 대문에 사화(史禍)라 고 부른다. 사화(士禍)란 공신, 외척, 인척 세력이 사림을 견제한 사건이다.


연 산군은 영민하고 예술적 기질이 있고 학식도 있었다. 초기에 정치를 잘했는데, 사림에서 간섭이 계속 심해지자 그들을 숙청하게 되었고, 연산군 때 일어난 양대 사화가 무오사화(戊午史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이다. 갑자사화 때에는 연산군이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사건을 알게 되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을 모조리 죽인다. 이때 김종직의 제자이며 조광조의 선생인 김굉필도 사형 당한다.


사 림을 쫓아내던 훈구파들이 연산군을 폭군으로 몰아 쫓아내고 중종이 등장한다. 바로 지금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중종이다. 드라마 속의 중종과 장금의 관계는 물론 픽션이다. 그러나 중종이 57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내의원들이 약제를 상의하고 있는데 “내 증세는 여의 장금이 안다”라고 전교하는 결정적인 한 줄의 글이 <중종실록>에 실려 있다.


중 종은 훈구파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자 갑자사화 때의 피해자들인 사림을 다시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조광조(趙光祖:1482~1519)이다. 그는 김굉필의 유배지에서 2년간 성리학을 공부하고 젊은 나이에 사림파 영수가 되어 발탁된다. 34세에 등용되어 대사헌에 오른다. 기묘사화로 38세에 죽는다.


조 광조는 김굉필로부터 엄격한 성리학을 배웠다. 그는 항시 의관을 정제하고 먹는 것도 단정하게 먹고, 성격이 칼 같은 사람이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산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의 조선조를 요순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인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이것을 흥지치(興至治:지극히 이상적인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라 불렀다.


퇴 계와 율곡의 평가가 재미있다. 퇴계는 조광조를 극히 존중하는 반면, 율곡은 공부가 덜된 상태여서 융통성은 없고 이상만 높고, 현실에 어두운 자로 평가했다. 조광조는 급진적이고 엄격했다. 위훈자(僞勳者) 72명을 적발해서 공신록에서 삭제했다. 궁궐 내에 설치되어 있었던 소격서(昭格署)를 철폐하게 했다. 유교적인 합리주의 국가에서 미신을 믿어서 되겠는가? 밤낮으로 왕에게 읍소해서 철폐시켰다고 한다.


소 격서(昭格署)는 궁정 내 도교의 제식을 거행하는 관서인데, 고려 때부터 내려왔다. 우물에 비친 북두칠성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다. 1518년 조광조에 의해 철폐되었다. 위훈삭제(僞勳削除)란 중종반정을 도모한 공신들의 과장된 공훈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청해서 76명이 공훈록에서 삭제되었다.


조 광조를 역사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진적이고 엄격한 국정은 문제가 생기고 반발이 심했다. 그는 조선왕조에 도덕군자의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어준 사람이긴 했으나 중종은 그를 내치고 말았다.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을 갔다가 곧 이어 사사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 愛君如愛父(애군여애부), 憂國若憂家(우국약우가): 나는 임금을 내 어버이처럼 사랑했고, 나는 국가를 내 집처럼 걱정했다. 조광조는 조선왕조에 칼날 같은 도덕군자의 기풍을 세웠고, 죽어서도 신진사림의 상징이 되었다. 조광조가 투옥되었을 때 유생 일천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무죄를 호소했다.


중 종 이후 조선왕조의 역대 사림들, 지식인들은 스스로가 조광조의 후예라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 조광조의 순수한 도덕군자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커 나온 대표적 인물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다. 그는 연산군 때부터 선조 때까지의 조선중기 대학자였으며, 조선왕조가 유교국가로서의 가닥이 잡히게 했다.


이 퇴계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주자 이후 동아시아 최고의 성리학자로서 평가받고 있다. 이퇴계의 시대에 들어 와서 우리나라의 유교가 제자리를 잡아갔다. 즉, 정도전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의 유학은 이퇴계에 이르러 조선 사람들의 내면적 삶의 철학이 되었다. 나 도올의 학문적 성향이 기론(氣論)쪽이었으므로 젊었을 때 이퇴계를 싫어했었는데 공부를 해갈수록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의 학문적 태도에 존경스러운 면이 많다.


1558 년 10월, 58세 노인이었던 퇴계가 지금의 국립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새로 급제한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 퇴계시대의 대학자, 본관은 행주, 1558년 문과에 급제, 성균관 대사성까지 올랐다.)이가 찾아왔다. 당년 32세의 청장년이었던 기대승을 만난 58세의 퇴계는 그의 학덕에 충격을 받고 그에게 배웠다. 이퇴계는 마음이 열린 학자였다. 평생 손아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기씨(奇氏)는 희성이나 기대승과 같은 행주 기씨성을 가진 여자가, 궁녀로 원나라에 가서 마지막 황제 순제의 황후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이것을 계기로 고려에서도 기씨가 세력 기반을 얻었다.


이퇴계와 기대승의 대면:

기대승: 四端發於理(사단발어리), 七情發於氣(칠정발어기): 사단은 리(理)에서 나오고, 칠정은 기(氣)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퇴계는 四端(사단), 理之發(리지발); 七情(칠정), 氣之發(기지발): 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이라 했다. 리기(理氣)는 인간의 마음에서 발현되는 두 개의 주체가 된다.


기(氣) →발(發)→칠정(七情), 리(理)→발(發)→사단(四端). 주자학에서는 리(理)는 순선(純善)한 것이기 때문에, 이상적 이념일 뿐 구체적 작위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리발(理發)은 주자학에서도 이단적인 생각이다. <주자어류>에도 리발(理發)이라는 말은 있으나 퇴계의 주장과는 어감이 다르다.


기대승의 반문:

맹자께서 惻隱之心(측은지심)은 仁之端也(인지단야)라 하셨다. 단(端)=측은지심(惻隱之心)=정(情)≠성(性): 단(端)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정(情)이기는 하나 성(性)은 아니다. 인의 단초로 보인다. 사단(四端): 측은지심(惻隱之心)=인(仁), 수오지심(羞惡之心)=의(義), 사양지심(辭讓之心)=예(禮), 시비지심(是非之心)=지(智). 단(端:tip)이란 본체가 들어난 하나의 단서이다. 단(端)은 성(性)이 아니라 심(心)이다.



기대승 왈: 非七情之外復有四端也(비칠정지외복유사단야): 칠정의 바깥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니고, 四端(사단), 乃七情中發而中發而中節者之苗脈也(내칠정중발이중발이중절자지묘맥야):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발현되어서 제대로 상황에 딱 들어맞아서 도덕적으로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단이라 한다. 사단과 칠정은 나누어질 수 없다. 사단(四端)은 사덕(四德:인의예지:仁義禮智)이 아니다. 기대승의 학문이 정확하다고 본다.


이퇴계: 夫四端情也(부사단정야), 七情亦情也(칠정역정야), 均是情也(균시정야): 무릇 사단은 정이고 칠정도 정이고, 둘 따 똑같이 정이다. 정에는 사단과 칠정이 있는데 그 소종래(所從來), 즉 감정의 근원을 캐들어 가보면, 사단(四端)은 본연지성=리(理)이고, 칠정(七情)은 기질지성=기(氣)이다.


사 단(四端)이건 칠정(七情)이건 똑같이 이기(理氣)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을 똑같다고 인정해버리면 사단이라는 인간의 도덕 원리가 칠정에 의해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게 된다. 인간 심성의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종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퇴계는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음에도 조정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 사림과 왕정 간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출사하지 않으려는 사림을 출사시킬 때 왕정의 정통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소수서원(紹修書院):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 퇴계가 풍기 군수로 있을 때 명종으로부터 편액(扁額)을 받음. 이 서원은 하바드대학 보다 93년 앞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


퇴 계 다음에 율곡이 등장한다. 이율곡의 철학은 퇴계와는 계통이 다르다. 율곡은 고봉(기대승의 호)의 논리를 계승했다. 율곡은 이발(理發)을 인정치 않았다. 율곡사상은 기발(氣發)만을 인정했다. 퇴계 사상은 순수한 인간의 도덕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퇴계의 사상은 관념화되기 쉽다. 이발은 이상주의적 인간관이고, 기발은 현실주의적 인간관이다.


기 발적인 인간은 잘못도 저지르게 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게도 되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율곡과 기대승과 같이 기발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현실정치에 적극참여하고 사회 개혁에도 참여한다. 이율곡은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 사회적 관심도 많았다.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중시했다. 철학도 이발보다 기발을 강조했다. 현실적인 인간을 중시한다.


조 선왕조의 관료 중심의 정통유학은 율곡 중심으로 간다. 율곡 밑에서 나온 사람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다. 기호학파가 형성되고 조선사상사의 주류를 형성한다. 이퇴계는 비주류이다. 그러나 우리는 퇴계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다. 퇴계학파가 비주류라 할지라도, 그의 도덕적인 철저함과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보는 주리론으로 현실주의적인 주기론자들이 점점 기울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잘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념화되어 갔다. 조선 성리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 호는 우암(尤庵). 조선후기 기호학파, 노론의 영수.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는 기사환국 때 죽음.



조 선 후기에 오면 이러한 주기(主氣)계열의 현실파 학풍이 체계적으로 퇴화되어 관념화되는 현상이 생긴다. 그리면서 성리학은 생명력을 잃고 현실감각을 상실해 간다. 즉 관념화되고 종교적인 도그마(Dogma)로 간다. 구한말에 와서는 현실 대처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조선왕조가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간단하게 정리한 조선 사상사의 흐름이다.


이 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조선사상사를 이런 시각에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세계사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 조선 성리학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것을 다음 시간에 여러분에게 정확하게 다시 한번 짚어드리겠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강의이다. 이런 강의는 다른 데서 #$@ 들을 수 없다.


우 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고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사상을 매개로 해서 어떻게 뼈저리게 노력해 왔는가를 여러분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허튼 수작들 그만하고, 무언가 정도를 향해서, 바른 길을 향해서 우리 역사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비아마켓   24시간대출 대출후   racingbest   althdirrnr   유머판   코리아e뉴스   gkskdirrnr   LevitraKR   보령출 . 장 . 샵 후기   24 약국   우즐성   yudo82   최신 토렌트 사이트 순위   ViagraSite   채팅 사이트 순위   비아센터   allmy   미소약국미프진   밍키넷 갱신   미프진 구매후기   시알리스구매   코리아건강   비아탑-시알리스 구입   돔클럽 DOMCLUB.top   bakala   만남 사이트 순위   미프진 후기   노란출장샵   캔디약국   skrxodir   MifeSilo   rudak   euromifegyn   euromifegyn   파워맨   woao50   skrxo   비아365   비아탑-프릴리지 구입   낙태약   출장 파란출장마사지   gmdqnswp   24parmacy   24시간대출   시알 리 스 정품구입   미프블로그   북토끼   kajino   Mifegymiso   무료만남어플   viagrasite   미프뉴스   gyeongma   비아센터   24 약국   링크114   비아탑   미소약국   miko114   천사약국   미프진약국 부작용   mifegymiso   alvmwls   ViagraSilo   miko114   미페프리스톤   주소요   alvmwls.xyz   Gmdqnswp   비아몰   yano77   돔클럽 DOMCLUB   주소야   비아랭킹   신규 노제휴 사이트   totoranking   24Parmacy   출장안마   대출DB   실시간무료채팅   vianews   마나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