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판은 노사 奇正鎭의 시문집으로 문집 28권, {答問類編} 15권, 부록 2권의 목판본이다. 1882(고종19) 제자들이 문집 22권을 편집하고, 1890년 {답문유편} 15권을 완성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고, 그 뒤 1902년 목판본으로 중간되었다. 이 重刊本은 初刊本의 체재와 거의 같으며, {答問類編}에는 鄭義林의 발문이 있다. 문집은 詩文 등 문예 위주의 내용으로 편집된 문집류와 달리 經學 내지 性命·理氣에 관한 철학 사상으로 채워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본판의 내용을 살펴보면, 文集은 권수에 목록이 있고 권1·2는 詩, 권3은 疏·辭狀·策, 권4∼15는 書, 권16은 雜著, 권17∼20은 序, 권21∼23은 記, 권24는 跋, 권25는 箴·祝文·祭文, 권26은 碑·墓誌銘, 권27은 墓表, 권28은 傳·行狀·遺事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答問類編}을 간행하였을 때에 간행된 부록 2권이 있다.
{答問類編}은 권1∼3은 論道體로, 권1 總論, 권 2 性命, 권3 心性情·形氣神理·鬼神命數, 권4·5는 論學으로 권4 總論·持守, 권5 知行·出處, 권6∼9는 論經으로 권6 小學·大學, 권7 論語, 권8 孟子·中庸, 권9 詩·書·易·春秋·禮記, 권10·11은 論先儒書로 周子·程子·張子·朱子 및 諸儒, 권12∼14는 論禮로 通禮·冠禮·婚禮·喪禮·祭禮·邦禮, 권15는 論史·訓門人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문집 28권 중 12권을 차지하고 있는 [書]의 주요 내용은 그가 문인들과 주고 받은 성리학적 질의에 관한 것이다. 문집 중의 書·雜著와 {答問類編}은 그의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雜著] 중 <納凉私議>와 <猥筆>은 그의 理에 대한 철학 사상의 핵심적인 것이다. <定字說>은 태극도설 중의 '定'자에 대한 대한 해석이며, <偶記>는 四端七情을 논한 것이고, [理通說]은 理氣 및 李珥의 理通氣局에 관한 것이다.
고산서원 장판각에는 壬寅年(1902)에 丹城 新安社에서 판각 간행된 {노사집} 책판 653판과 {답문유편} 책판 209판 모두 862판이 보관되어 있다. {노사집}은 목판으로 간행에 앞서 이미 1891년과 1898년 2차에 걸쳐 목활자로 고산서원의 전신인 澹對軒에서 인출된바 있으며, 그후 목판본은 목활자본을 증보하여 1902년에 간행한 것이다.
책판의 전체 크기는 대략 가로 52cm이며 세로 21.5cm이다. 변란은 四周單邊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cm, 세로 20.5cm이다. 반면은 10행으로 되어 있고, 한행에 20자씩 배자되어 있다. 판심부에는 '蘆沙先生文集'라는 서명이 보이고, 그 아래로 卷數 및 張數가 표시되어 있다. 어미는 상하내향의 2엽화문 형식이다.
판각시기는 노사집의 부록 권2의 말엽과 {답문유편} 권15의 말엽에 '壬寅(1902)春丹城新安社開刊'이라는 간기가 판각되어 있어, 1902년에 단성의 신안사에서 판각 간행된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판각지인 단성은 지금의 경남 산청군에 편입되어 있는 지명이며, 신안사는 당시 지방의 대표적 출판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