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urujung.blog.me/10142267808에서 인용
스스로 '역사인물 기행작가'로 자처하는 김세곤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이 또 역사인물 기행물을 펴냈다. 13년간 11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선 유학사상 가장 큰 사상 논쟁을 벌인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과 퇴계 이황(李滉, 1501-1570) 관한 책이다. 김세곤 학장은 제1부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 제2부 '고봉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도서출판 온새미로)를 최근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봉 기대승에 초점을 맞추고 퇴계 이황과의 관계를 다시 살폈다. 또 고봉과 관련된 장소와 고봉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흔적을 일일이 답사하며 사진과 함께 역사인물 기행을 글로 담았다. 관련 자료를 챙기는 것도 힘든데 역사현장까지 발걸음하여 얽힌 이야기를 책에 담아낸 정성이 차고 넘쳐 역사인물 기행물을 반드시 쓰고자 하는 집념이 느껴진다.
김세곤 학장이 그동안 해온 일을 보면 단순한 역사기행으로 보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고용노동부에서 26년간 일하였고 2011년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별정직 고위공무원)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퇴직하였다. 공직에 있던 2006년 김 학장은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를 펴내는 것을 시작으로 『송강문학기행』(2007),『고봉, 퇴계를 그리워하다』(2009년),『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2011년),『청백리 송흠』(2011년)을 출간하였고, 전남 보성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임진왜란 의병장 죽천 박광전'을 연재하였다.
고봉 기대승은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 묻혔으니 관련 유물과 유적이 광주와 전남 곳곳에 있다. 저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 월봉서원 뒤 백우산 자락에 있는 고봉의 묘소를 찾아가 절을 올리는 것으로 이 기행을 시작했다.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기행 글을 쓰겠노라"라고 아뢴다. 그리고 고봉의 탄생, 어린 시절, 신접살이, 부모 관계를 상세히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고봉과 친하게 한다. 벼슬에 나간 고봉이 거유(巨儒) 퇴계 이황과 만나고 편지로 사상논쟁을 벌이게 된 과정을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 '퇴계와 고봉과의 사단칠정논변', '퇴계, 고봉의 멘토가 되다', '퇴계, 고봉에서 충고하다', '퇴계와 고봉, 학문적으로 도반(道伴)이 되다', '사문(斯文)이 돌아가심을 통곡하며', '고봉, 퇴계를 그리워 하다', '조선성리학의 큰 별 떨어지다'라는 제목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소개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고봉과 퇴계의 '사단칠정'논쟁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들어 알고는 있지만 왜 두 분이 13년간이나 치열하게 논쟁을 했고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국역 고봉집』을 구해두고 언젠가 읽어서 알아보라 마음먹었지만 여태 실행하지 못했다. 김 학장이 애쓴 덕분에 '사단칠정' 논쟁의 전개과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 논쟁이라 하니 두 분이 "내 주장이 옳고 네 주장은 틀렸다"고 피터지게 싸웠을거라 생각한다면 빗나가도 크게 빗나갔다.
얼마 전에 깨우쳐 준 두 번째 편지를 받고, 내가 앞서 보낸 편지에서 말이 엉성하여 그릇된 곳이 있었음을 알고 삼가 수정하여 이제 그 개본(改本)을 전면에 써서 가부를 묻고, 그 뒤에 바로 두 번째 편지를 연속하여 써 보내니, 분명하게 회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봉의 편지를 받고 퇴계가 보낸 답장의 서두이다. 26세나 많은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편지. 새까만 후배가 지적한 내용을 받아들여 수정하고 다시 의견을 묻는다. 그런 퇴계에게 고봉은 "퇴계 선생님께 올립니다"라고 스승으로 대했다. 이런 관계가 13년간 지속되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서로 이, 기에 대한 논점이 달라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서로 신뢰를 가지고 상호 존중하여 조선 유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높이 평가되었으니 여헌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글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조그마한 편지에서도 서로 권면한 것이 모두 서로 붙들어 주고 채찍질하며 절차탁마한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비단 고봉이 퇴계 선생에게 칠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퇴계 선생께서도 고봉에게 의뢰하여 유익함을 받은 것이 많았으니, 그 탁마하여 성취한 것이 깊다 하겠다.
이런 사귐, 이 시대에도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봉은 벼슬을 그만두고 광주에 살 때는 제자를 기르고 학자들과 교유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 광주와 담양에는 고봉과 뜻이 통하는 이들이 많았다. '면앙정가'로 유명한 송순이 담양에 있어 그를 중심으로 김인후, 임억령, 소세양, 양산보, 박순, 고경명, 정철, 임제 등이 모여들었다. 저자는 이 사람들과 고봉의 인연이 어린 유적에 찾아가 유적을 소개하며 풀어낸다. 사람이 만나면 그 만나는 장소마다 의미가 있고 흔적이 있는 법. 그 흔적을 실마리로 인연의 아름다움을 ㅤㅉㅗㅈ는다. 그러다보면 면앙정, 소쇄원, 식영정, 임류정, 환벽당, 송강정, 풍영정, 요월정 등 광주 전남의 정원과 정자를 만나게 된다. 한 시대를 풍요롭게 살아간 인물이 있어 우리도 풍요로워지는 듯하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책으로 만나는 동안 그와 대비되어 드러나는 것, 이 시대 우리의 삶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 우리의 삶이 수백 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삶보다 더 나을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걸 깨우쳐주는 게 옛 인물의 전기물이리라. 이 책은 그런 역할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