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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5 10:27
奇皇后에 대한 오해와 편견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537  
奇皇后에 대한 오해와 편견
 
기황후는 1333(충숙왕 복위 2)에 원의 휘정원(徽政院)에 있던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어 순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1335년 순제의 정후(正后)인 다라시니笞納失里의 일족이 축출되자 황후로 책봉될 기회를 맞았으나 바엔伯顔등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1339년 황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猶識理達擸를 낳음으로서 13404월에 순제의 제2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가 된 뒤 곧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휘정원을 자정원(資政院)으로 개편하는 등 전권을 행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1365년에는 전례를 깨고 정후(正后)가 되었으나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한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기황후 개인에 대한 기록의 전부이다. 최근에(2001) KBS 역사스페샬을 통하여 이보다 더 상세히 알려진 것은 명나라 군사에 쫓겨 기황후와 함께 내몽고로 들어간 순제가 16개월 뒤에 황태자 아이유시리다에게 전권을 이양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기록이 담긴 북순사기라는 사서가 있다는 정도이다. 이 책은 신하 유순이 순제와 기황후와 함께 13687월 북경을 떠나 내몽고로 도피하면서 겪은 17개월 동안의 과정을 기록한 글이라 하나 그 북순사기에도 기황후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황후에 대한 여러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기황후가 명확히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오히려 덕행에 대한 기록이 있음)에도 그 동안 기황후가 부정적인 인물로 매도(?)당하는 것은 원나라를 무너뜨린 명나라가 만들은 원사의 기록과 고려에서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끝내는 모반(謀叛)까지 저지르는 기철(奇轍)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몽골제국의 몰락에 기황후의 야심이 큰 몫을 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YTN(연합통신) “대몽골 역사기행특별취재팀이 만난 몽골국립대 역사학과의 잉크체첵교수의 말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토곤 테무르 대칸이 대륙에서 밀려나는 과정에서 고려인 황후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미 몽골이 몰락 시기에 접어들었고 고려인 황후가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상황이 아니었다. 황후의 궁정암투 때문에 몽골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볼 수 없다.
몽골제국의 몰락은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여러 황후들이 정치문제에 참여했던 일이 많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대칸을 도와주기 위한 역할을 했다. 울제이 쿠투完子忽都칸툰(奇皇后)도 이런 전통에 따라 정치에 어느 정도 관여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 때문에 몽골제국이 망했다는 주장은 완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징기스칸의 말처럼 몽골은 결국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개척하는 일, 즉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유목마인드-정체성을 상실하면서 제국의 멸망이 운명처럼 다가왔을 뿐이다. 그 마지막 정점에 기황후가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며 노력을 하였지만 승자(勝者)의 기록 속에 형편없이 매도당한 것은 아닌지, 향후 전문 학자들의 깊이있는 연구를 기대해본다.
 
연천문화원 전사무국장 겸 향토사 연구소 연구위원 최 병 수

기광석 13-06-08 13:34
 
운영자님 잘보앗습니다. 역사는 승자의기록이다보니매도당하는경우가 만습니다. 좋은글마니올려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