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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3 16:12
MBC <기황후>, 제작 전에 역사 공부 좀 하지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474  
 
문화방송(MBC)이 50부작으로 기획한 드라마 <기황후>가 큰 화제를 몰면서,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는 제작 발표회 단계에서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담당 PD가 "기황후에 대한 기록 자체가 상당히 단출하고, 원나라의 역사 자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기황후 내용은 전적으로 작가의 창작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라고 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역사드라마를 단순히 드라마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기황후> 제작진이 <고려사> 봤더라면…

그 동안 '기황후'의 역사왜곡에 대한 부분은 주로 기황후, 기황후의 족벌 세력, 충혜왕 등 에 국한되어있다. 즉 국내에서는 기황후를 필두로 기 씨 일족이 조국인 고려에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녀와 그 가족으로 이해되고 있고, 충혜왕은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른 대표적인 퍠륜의 암군인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 국한되어있다. 또 엉성한 전투장면도 봐주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제작비의 한계라고 보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 점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새삼 다룰 문제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몽골의 대제국(원나라)과 고려와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특히 몽골의 일개 장군이 고려왕을 하대한다거나 공녀(貢女)에 대해서 지나치게 묘사된 부분이 문제다. 마치 공녀가 국가적인 시련인 듯이 묘사되어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원나라는 고려에 공녀라는 매우 야만적인 요구를 해왔다. 공녀란 말 그대로 여자를 공물로 바치는 것이다. 원나라의 공녀 요구는 80년간 정사에 남아 있는 것만 50여 회에 이르고 왕실이나 귀족이 개인적으로 요구한 일도 허다하였다고 한다.(네이버 인물 한국사, 기황후)"라고 알고 있다.

MBC의 기획 의도를 보면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의 삶은 가혹하고 참담했다. 궁중의 시녀가 되거나 고관대작의 첩실이 되는가 하면, 유곽에 팔려나가 망조가 깃든 힘없는 나라는 더 이상 이국 땅에 끌려간 제나라의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다. 기황후도 여느 공녀처럼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운명의 질곡 속에 내던져 져야만 했다"라고 한다. 이 글을 쓴 사람들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더라면 이런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MBC 드라마 <기황후>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공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사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공녀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찾아보고 드라마를 썼더라면, 이런 드라마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사절요>에 나타난 공녀의 송출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자.

▲ <고려사절요>에 나타난 공녀 기록.(려증동(1990)에서 재구성]) ⓒ김운회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따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충렬왕 때 몰려 있고, 고려 원종 15년 3월부터 공민왕 5년까지 전체 82년간 원나라로 간 여인들의 수는 800여 명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나온 수는 713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1274년에서 1276년까지 3년간 전체의 91%가 공녀로 갔으며 이후 80여 년간은 매년 거의 1∼2명의 수준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리는 시기는 충혜왕의 시기인데 이 당시는 공녀가 거의 없는 수준으로 그 숫자도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였다.

1년에 1∼2명이 고관대작들의 요청으로 공녀로 가는 것이 드라마의 작가나 PD가 말하는 것처럼 "망조가 깃든 힘없는 나라는 더 이상 이국 땅에 끌려간 제나라의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다."라고 비분강개한다면, 이들이 아는 역사 지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 공녀는 고려와 갈등이 많았던 초기에 일종의 전리(戰利)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몽골은 고려를 친인척으로 대했지만 초기에 고려가 몽골에 대해 지속해서 괴롭힌 데에 대한 일종의 보복성 조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시대인 충혜왕 당시에는 이미 공녀가 거의 사라진 상황인데 공녀 문제를 마치 국가적 문제인 듯 심각하게 다룬 것 자체가 무지의 소치이다.

물론 공녀의 수치가 적다고 해서 이들의 행위가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치 일제강점기 정신대식으로 끌려간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일부에서처럼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인들은 짝이 없는 여인들이었고 상당수의 고려 처녀들은 원나라 귀족 집으로 들어갔고 과부들은 일반 평민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기자오(奇子敖)의 따님은 원황제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어 태자를 낳아 황태후가 되었고(이 분이 바로 기황후이다), 김심(金深)의 따님은 원황제 무종(武宗)의 총애를 받았고, 조서(趙瑞)의 따님은 총신의 아내가 되었다.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 드라마와 완전히 달라

공녀 문제는 단지 원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명나라의 성조(영락제)는 즉위하자마자 조선의 여자들이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람을 여러 차례 조선으로 보내어 여자들을 뽑아오게 했다. 성조 당시 궁인들은 330명(1차), 2800 명(2차) 등이 변을 당하여 몰살되었는데 이때 조선 여인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또 성조는 죽으면서도 순장(殉葬)을 명하여 13명의 비빈을 순장시켰는데 여기도 조선 여인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큰 만행 중의 하나인 순장은 조선의 선비들이 오매불망 부모의 나라라고 숭배하던 명나라 태조 주원장에서 시작되어 성조 이후 인종(仁宗), 선종(宣宗)때까지 계속되다가 1464년 영종(英宗)이 죽으면서 유조를 내려 비빈들의 순장을 금지함으로써 겨우 폐지됐다.

이상을 보면 이 드라마의 작가나 PD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몽골에 대한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몽골에 대한 비하로 연결될 수가 있다.

이러한 역사 왜곡은 조선 후기 광해군의 실각 이후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인조(仁祖) 이후 정권의 실세들이 자기들의 실정(失政)을 은폐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각종 역사 왜곡을 자행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에게 중국과 조선을 제외하면 모두 오랑캐였다. 한족(漢族)에게 자신도 동이(東夷)라는 오랑캐이면서도 말이다. 이들이 이후 동이라는 말이 가지는 긍정성에 찾기 위해 온갖 역사의 쓰레기통을 다 뒤지는 풍토를 만들게 한 것이다.

당시의 몽골대제국은 군대가 갈 수 있는 곳이면 모두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지역에서 유독 고려(高麗)만이 독립국으로 남아있었다. 당시의 지도를 보면, 세상은 오직 원나라(몽골 대제국·Mongol Great Empire)과 고려(Korea)만이 있는 듯하다.

▲ 대몽골 제국과 고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2006)

이것을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온 대로 고려가 몽골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객관적인 국력의 수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나라의 남송 정벌 과정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다. 금나라와 남송을 멸망시킬 정도의 나라가 고려가 강성해서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한 일이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드라마와는 반대로 세계를 무력으로 짓밟은 원나라가 고려와의 관계 속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고려에 우호적이었고 관대하였다. 몽골이 전쟁을 거쳐 정복한 나라를 부마국(駙馬國)으로 삼은 경우는 없다. 대부분 몽골의 통치자들은 사신을 죽이거나 자기들에게 대항한 군주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복하는데 고려처럼 부마국으로 삼고 국체(國體)를 유지시켜준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같은 경우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을 때는 대량 학살과 전국토의 초토화(焦土化)를 시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행태를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원나라의 고려에 대한 짝사랑에 가까운 사항들이 비일비재하다. 당시 원나라의 지배층들의 고려에 대한 심경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즉 원나라(대몽골제국) 조정은 고려가 원나라에 대하여 잘못한 바에 대하여, "거란을 평정하고 찰자(剳刺)를 죽인 뒤로부터 일찍이 한 번도 사자를 보내 궐하로 오지 않았으니 이것이 죄의 하나요, 사신에 명하여 훈언과 성유를 가지고 가게 하였는데 문득 감히 되돌려 보냈으니 이것이 죄의 둘이요 너희들이 (황제의 사신인) 저고여를 모해하고 이에 만노의 민호가 이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죄의 셋이요 너희에게 진군을 명하고 이어 너희 군신으로 하여금 입조케 하였는데 너희는 감히 항거하고 해도로 들어가 숨었으니 이것이 죄의 넷이요 너희들의 민호로서 구집되지 아니한 현재의 수를 감히 망주하였으니 이것이 죄의 다섯이다."(주1)라고 힐난했지만 고려 조정은 이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지 않다.

<고려사>에서는 원나라가 거란을 고려를 위해 처리해주었으며 사신 저고여를 죽인 것에 대해서 엄중히 문책하는 듯하면서도 "황제의 성지에는 말씀하기를 만약에 너희들이 전쟁을 바란다면 우리도 함께 싸워 끝까지 갈 것이나 만약에 투항해 온다면 전에 이미 투항해 온 자들과 마찬가지로 대할 것이다. … 황제의 대국토에서는 몽골인들은 사방의 땅들을 모두 수취하였는데 설령 투항해 오지 않는 나라들도 모두 점령해버렸다. 너희들이 투항해 오지 않는다면 이미 투항해 온 사람들도 함께 타멸해 버리겠다. … 그러나 너희가 투항해 온다면 그 뒤에는 우리들은 단지 한 집안이 될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친밀해질 것이다." (주2)라고 하여 도대체 원나라의 궁극적인 의도는 무엇인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횡설수설하고 있다.

그리고 수십 년의 긴 세월 동안 원나라의 코앞에 있는 나라가 항복도 아니고 항전도 아닌 상태로 있는 나라도 없었을뿐더러, 원나라의 강력한 협박에도 고려에서의 대응은 이상할 정도로 여유롭다. 이런 대목들은 <고려사>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고려사>에는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고려국이 만일 실로 출항하면 비록 닭 한 마리 개 한 마리도 죽이지 않도록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해도를 공격하여 파멸케하라 하시었으니 지금 국왕과 태자가 서경에 나와 항복하면 우리는 곧 군대를 돌려 회군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도 왕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늙고 병들어 멀리 갈 수는 없는 일이다."라 하고 이에 영안공 희와 지중추원사 김보정을 보내어 차라대(車羅大)의 병영으로 가게 하였다.(주3)

또 같은 부분의 기록에 "무술에 차라대가 몽골대 등 50인을 보내왔다. 기해에 제포궁에 행차하여 객사를 인견하니 그가 말하기를 "태자가 육지로 나와서 (항복하면) 저희 군사는 당연히 물러갈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이 말하기를 "태자가 병이 있으니 어찌 능히 나갈 수가있느냐?" (주4)라고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는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역사에 대한 왜곡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드라마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고등학교에서 배운 정도의 지식 정도만으로 제작하기에 앞서 좀 더 공부하고 몽골 관련 전문 학자들에게 자문하고서 드라마 제작에 임했으면 이런 이상한 드라마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 주석

(주1) 夏四月蒙古詔曰 : 自平契丹賊殺剳刺之後未嘗遣一介赴闕罪一也命使*賫{齎}訓言省諭輒敢射回罪二也爾等謀害著古與乃稱萬奴民戶殺之罪三也命汝進軍仍令汝弼入朝爾敢抗拒竄諸海島罪四也汝等民戶不拘執見數輒敢妄奏罪五也.(『高麗史』23卷「世家23-高宗2」)

(주2) 皇帝聖旨道若你每待廝交阿每一處廝相殺住到老者若還要投呵依前一□投了者去若你每民戶根底的愛惜依前一□投拜來下去底使臣怏怏地交回來者若要廝殺你識者皇帝大國土裏達達每將四向周圍國土都收了不投底國土都收了你每不聽得來投去了底人都一處行打你每不聽得來阿每將劫*호你每底寄不及都收撫了聽你每根底來. 高麗國王你每底民戶裏投拜了的人依舊住坐不投拜底人戶殺有虎兒年投投拜了咱每不啻一家(來那什麽使去底使臣是阿土(『高麗史』23卷-「世家23-高宗2」)

(주3) 皇帝勑云: '高麗國如實出降雖雞犬一無所殺否則攻破水內.' 今國王及太子出降西京則便可回兵." 王曰: "予旣老病不可遠行." 乃遣永安公僖知中樞院事金寶鼎如車羅大屯所.(『高麗史』24卷「世家24-高宗3」)

(주4) 戊戌車羅大遣蒙古大等十五人來. 己亥幸梯浦宮引見客使曰: 太子出則兵可退矣. 王曰: 太子有病豈能出哉.(『高麗史』24卷「世家24」高宗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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