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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0 20:44
기황후릉터 소개 연천기행문 <조선일보 2016.6.8.>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846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재인폭포 아래로 1000년 역사가 흐른다

 
입력 : 2016.06.08 03:00 | 수정 : 2016.06.09 13:33

[39] 궁장 현중순과 천년 역사가 공존하는 연천

고구려부터 분단까지 모든 역사 흔적 남은 곳
활꾼 현중순은 조선 목궁 부활시켜
원나라 기황후 묻혔다는 능 터도 연천 산기슭에
한탄강으로 흐르는 폭포는 용암이 만든 미학

박종인의 땅의 歷史
궁수(弓手)에서 궁장(弓匠)으로

올해 쉰다섯 먹은 현중순은 정미소 주인이다. 경기도 연천 전곡에 산다. 정미소는 가업이다. 할아버지도 정미소를 했고 아버지도 정미소를 했다. 이북 땅이던 중면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직접 물레방아를 만들어 방앗간을 했다. 전쟁이 나고 남쪽으로 몇십㎞ 피란 와서도 정미소를 열었다. 시간이 나면 활을 만들어 산에서 꿩이며 돼지를 사냥하며 놀았다. 그 손자 현중순이 정미소를 물려받았다.

손자는 "쌀가마 옮길 힘도 기를 겸, 남에게 맞기 싫고 담력도 기를 겸" 합기도를 배웠다. '아무도 몰래 공중 부양도 해 본다'는 공인 4단이다. 쌀가마 짊어지다 허리 디스크가 나가서 헤매고 있을 때, 합기도 도반들 권유로 국궁을 배웠다. 나무에 물소 뿔을 덧대 만든 각궁(角弓)을 배웠다. 공인 4단이다.

그런데 "각궁이 다 좋은데 너무 비싸고 쉽게 망가지더라"고 했다. 비를 맞으면 접착제로 쓴 아교가 녹아내렸고, 잘못 다루면 활이 부러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손재주가 근질거렸다. 2003년 현중순은 자기 손으로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 다섯 트럭을 이러저러하게 허비한 끝에, 2016년 현중순의 신풍정미소는 대한민국 실전 궁사들 성지로 변했다. 현중순은 궁수요 목궁장(木弓匠)이다.

기씨의 꿈

결혼기념일을 사흘 앞둔 2015년 2월 28일, 인천 강화도에서 사업을 하는 기남용(74)은 꿈을 꾸었다. "공장장이 나더러 짐승 한 마리 키우시라고 했다. 그러마 했더니 커다랗고 하얀 짐승을 또 주면서 '병든 놈 하나 더 키우시라'는 것이었다. 꿈이었다." 기남용은 5000원짜리 로또 복권 두 장을 사서 지갑에 넣고는 잊어버렸다. 눈 내린 결혼기념일 아침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서 연천에 있는 조상 할머니 묘 터로 찾아갔다. 경운기가 뚫어놓은 길 따라 덤불까지 갔더니 길섶 눈틈으로 하얀 돌이 나와 있었다. 작대기로 파보니 무덤 앞에 흔히 있는 석양(石羊)이 아닌가. 온전한 석양 한 마리와 부서진 석양 한 마리를 찾았고, 달려온 동생이 한 마리 더 찾았다. 텅빈 구릉 주소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 145다. 당첨되지 못한 로또 복권을 꺼내며 기남용이 말했다. "지금이야 텅 빈 구릉이지만 이곳은 우리 할머니, 고려 말 원나라로 시집갔던 기황후(奇皇后)가 묻힌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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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 있는 재인폭포는 폭포수가 없어도 아름답다. 중생대 용암이 만든 주상절리 절벽이 폭포수 아름다움을 뛰어 넘는다. 중생대부터 삼국시대,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연천에는 모든 역사가 살아 있다. /박종인 기자
왕들의 사냥터, 연천

연천은 번화한 도시였다. 고려 수도 개경에서 직선거리가 서울-일산 신도시보다 가까운 80리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때 화신백화점 분점도 있었다. 분단만 아니었다면 연천은 지금도 번성했을지 모른다.

임진강과 용암이 만든 험한 산세는 연천을 군사 지대로 만들었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만든 요새들을 빼앗으며 혈투를 벌였다. 분단 현실 속 연천 노변 풍경은 지금도 살벌하다.

군사 문화는 효율적이다. 적진(敵陣)을 점령하면 무기든 진지든 성곽이든 최대한 재활용한다.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처럼 지금 남아 있는 성터에는 시대별로 유적과 유물이 뒤섞여서 튀어나온다. 평화가 오면 군사 요충지는 어김없이 관광 명소로 변해서, 잔디 뗏장을 입힌 옛 성터는 사시사철 나들이객이 찾아온다.

사냥꾼의 땅이기도 했다. 연천에는 활쏘기가 흔했다. 조선조 왕실 사냥터도 연천에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도 활쏘기 대회가 열리곤 했다. 어릴 적 현중순도 수수깡에 못 박고 군용 통신전선인 삐삐선으로 활줄 만들어 활쏘기를 하고 놀았다. 맹수들이 사라지고 수렵 문화도 사라졌다. 활꾼도 사라졌다.

경주에 묻히지 못한 경순왕

경순왕릉 비석.
경순왕릉 비석. 신라 왕이 묻힌 고려시대 무덤에 조선시대 비석이 섰고, 그 비석에 20세기 총탄 흔적이 6개 남아 있다. 이 땅 역사가 비석에 응축돼 있다.
장남면 고랑포리 산 18-2번지에는 경순왕릉이 있다. 21세기 들어서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게 된 땅이다. 경순왕은 고려에 나라를 바친 신라 마지막 왕이다. 그래서 시호도 '공손하게 따른(敬順)' 왕이다. 그가 연천에 묻혀 있다. 고려 태조 왕건보다 35년 더 산 경순왕은 서기 978년 개경에서 죽었다. 신라 유민들이 들고 일어날까 걱정했던 고려 왕실은 '왕릉은 수도에서 100리 밖을 넘지 못한다'는 규정을 꺼내 귀향을 막았다. 그게 경순왕이 고랑포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연천에 묻힌 이유였다. 왕릉은 이후 새까맣게 잊혔다가 1747년 후손들이 찾아냈다. 그때 영조 임금이 "제사를 지내게 해달라"는 후손들 청원을 수용해 비석을 세웠다.

자, 비석을 본다. 비석에 농축된 이 땅 역사를 본다. 무덤 주인공은 신라 임금이요, 왕릉은 고려 무덤이다. 비석은 조선 때 세웠다. 그리고 비석에는 총탄 자국 6개가 선명하다. 뒤를 돌아보면 묘 앞 너른 터에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 작은 비석이 여행객들에게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읽어보시라"고 책갈피를 활짝 펼쳐놓고 있지 않은가.

궁장, 기황후 그리고 용암

궁장이자 궁사인 현중순. 과녁을 노려보는 눈이 매섭다.
궁장이자 궁사인 현중순. 과녁을 노려보는 눈이 매섭다.
활꾼 현중순은 연천 산하를 헤매며 목궁을 연구했다. 물푸레나무도 써보고 느릅나무도 써보고 구지뽕나무도 써봤다. 태워도 봤고 삶아도 봤고 땅에 1년 묻어도 봤다. 두 종류 나무를 덧붙여도 봤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활꾼들을 찾아가 노하우도 배웠다. 활을 알아야 활을 만드니, 궁술을 연마했다.

정미소에 있는 작업실에는 현중순이 만든 목궁들이 전시돼 있다. 각궁에 비해 길이도 길고 직선에 가깝다. 그가 말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병사들에게 근거리 사격술과 속사법이 보급됐다. 이동하는 목표를 타격하는 궁법도 보급됐다. 그 기본은 각궁이 아니라 목궁이다." 명상을 하는 궁도가 아니라 실전 병술이라는 말이다.

마당 한쪽에 있는 궁터에서 그가 활을 쏘았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온 것처럼, 활을 30도 비틀고 화살집에서 순식간에 화살을 꺼내더니 그보다 더 빨리 활을 쏘아댔다. 각궁처럼 입술에 활줄을 대고 쏘는 지중해식이 아니라 눈꼬리까지 손을 올려 쏘는 몽골식 사법(射法)이다. "몇 배는 더 정확하고 몇 배는 더 파괴적이다"라고 그가 말했다. 함께 시범을 보인 아들 승환은 "화살 종류에 따라서 멧돼지는 그냥 관통한다"고 했다. 대위 예편을 앞둔 승환 또한 육군참모총장기 전국궁도대회에서 우승한 궁사다. 아들과 사라졌던 활 문화, 무사 문화는 일단 이 정미소 주인에 이르러 부활 조짐이 보인다.

기황후 능터에서 발굴한 석인(石人). 무덤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 아니다.
기황후 능터에서 발굴한 석인(石人). 무덤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황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꿈을 꾼 후손 기남용이 말했다. "할머니 고향이 행주다. 유목민인 원나라에는 죽으면 고향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할머니도 아마 고향에서 죽게 해달라고 청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고향으로 가던 길에 죽었거나 아니면 변고가 있었거나."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기황후릉터는 앞에 '전(傳)'자가 붙어 있다. '~카더라'는 뜻이다. 연천문화원 향토사료연구위원장 이준용이 말했다. "기남용이 발견한 석양 셋과 기존에 발굴한 석인(石人)들은 재질은 물론 양식도 원나라 형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기황후 묘와 석인, 석양, 석물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제 석물만 찾아내면 이 '전(傳)'자를 뗄 수 있다." 석양과 석물은 지금 연천문화원에 옮겨져 있다. M1 소총으로 경순왕릉 비석보다 더 참혹하게 깨뜨려놓은 비석 하나도 볼 수 있다.

*

궁사가 찾아낸 목궁과 후손의 꿈이 찾아낸 할머니 무덤과 어린이 놀이터가 된 왕릉은 모두 연천 땅에 있다. 아득한 태초에 연천은 용암 지대였다. 용암은 모든 역사를 끌어안는다. 연천 북동쪽 재인폭포는 용암이 만든 미학의 극치다. 폭포수가 말라 있어도 즐겁다. 오각, 육각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주상절리(柱狀節理) 기둥들은 땅 위로 솟은 용암이 굳어서 생긴 무늬들이다. 그 용암이 땅을 녹이며 흘러간 흔적이 한탄강이다. 평화와 전쟁과 긴장과 나른함이 혼재된, 한탄강이 연천에 흐른다. 궁장의 꿈, 기씨 후손의 꿈도 함께 흐른다.

[연천 여행수첩]

〈볼거리: 여행순서〉

연천
1. 경순왕릉: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 오전 9시 개방. 반드시 비석을 살펴보라.

2. 호로고루: 고구려 군사요새 터. 경순왕릉에서 가깝다. 임진강 너머 풍경도 좋다.

3. 전 기황후릉터: 연천읍 상리 산 145. 텅 빈 구릉.

4. 연천문화원: 마 당과 로비에 전시된 석물들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라. (031)834-2350, cafe.daum.net/ycclove

5. 재인폭포: 권력과 탐욕에 얽힌 상반된 전설 이야기를 들어보라.

6. 국궁문화연구회(신풍정미소): 목궁을 포함해 국궁에 관심이 있다면 필수. 판매는 하지 않는다. 연천군 전곡읍 은대로2. 현중순 궁장 이메일은 8322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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