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기지권' 인정.."법적안정성 고려" 2017.01.19 15:02
"매장문화 여전..사회구성원 확신소멸 근거 없어"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다른 사람의 땅에 조상의 묘를 모셨더라도 20년간 별탈 없이 유지했다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토지를 사용할 권리는 계속 인정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9일 A씨(80)가 B씨(64)를 상대로 낸 분묘철거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일정기간 다른 사람의 땅에서 제사를 지냈을 경우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을 인정할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분묘기지권이란 분묘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달성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다른 사람의 땅에 주인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했더라도 20년간 평온하게 점유하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얻게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다. 분묘기지권을 얻게 되면 땅을 이용하는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최근 분묘와 제사에 대한 국민의식이 변화하고 있고,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시행에 따라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이론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해 9월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날 그동안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이 유지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선언했다. 매장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등 사회적 변화가 명백하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오랜 기간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에 의해 뒷받침되고 유효하다고 인정해 온 관습법의 효력을 '사회질서 변화로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부정하면 기존 관습법에 따라 수십년 간 형성된 과거의 법률관계 효력을 일시에 흔드는 것"이라며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습법의 법적규범 효력을 부정하려면 관습을 둘러싼 전체적 법질서 체계와 함께 대법원 판례의 기초가 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사회적 배경에 의미있는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장사법의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는 소유자가 이를 개장하는 경우 분묘의 연고자는 대항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장사법 시행 이후 설치된 분묘에 관해서만 적용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 법 시행으로 분묘기지권 존립근거가 상실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분묘기지권의 기초가 된 매장문화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고 사설묘지 설치가 허용되는 점,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이 사회구성원들의 법적 구속력에 대한 확신이 소멸됐다는 자료도 없는 점도 고려했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고 20년간 평온, 공연(公然)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얻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관습 또는 관행"이라며 "법적 규범으로 승인돼 왔고 이는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김용덕·박보영·김소영·권순일·김재형 대법관은 "장사법이 시행될 무렵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법질서에 반하고 사회구성원들도 확신을 갖지 않게 됐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A씨는 2011년 12월 강원 원주시 자신의 땅에 있는 분묘 6기를 관리해 온 B씨를 상대로 분묘를 이전하라며 소송을 냈다. 6기 중 5기는 20년 설치된 지 20년이 넘은 분묘였다.
1·2심 재판부는 기존판례에 따라 "6기 중 5기에 대해 분묘기지권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며 1기만 이전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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