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공민왕때 두 번 (공민왕 5년 기철일가, 20년 신해 기현일가)이나 피화되어 우리 기문은 극도로 침체되고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세종)에 정무공 (기건, 10세)할아버지가 나타나
(1) 3대 (세종, 문종, 단종)에 걸쳐 높은 벼슬을 하시고
(2)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도덕적 목민관으로 칭송을 받으셨다.
(3)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자 관직을 버리고 출사를 거부하며 절의를 지키고
(4)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이러한 네 가지의 큰 치적 으로 무너진 기문을 다시 일으켜, 명문가의 기틀을 다시 마련하시니
가히 중흥조라 추앙한다.
☆ 구질막 --- 세종때 정무공이 제주목사로 봉직하면서 한센병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구질막을
설치하였다. 이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획기적인 복지시설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제주시
도두동 몰래물 마을 해안가 (제주 공항 인근)에 ' 기건의 구질막터 ' 의 표지석을 세우고 기념
하고 있다.
청곡(우덕 바오로 -- 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