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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1 06:37
지평공파(持平公派) 곡성문중의 내력(來歷)
 글쓴이 : 기덕문
조회 : 196  
지평공 (중수 8世)은  현 (顯 7世)의 5형제 (중평~장성 광주, 중리 중민 중제 중수)중 막내로  태어나
지평공파를 이루고, 4개의 문중을 두고 있다.(장남 렴廉은 무후되고,  임稔은 김해  책責은 파주 
질質은 부림  분賁은 곡성문중)

곡성문중은 분(賁 9世)을 선조로 하고 있으며,  기묘사화 후 늦게 복양 (福良 14世)이 큰 집 (중평~장성 광주)
을 따라 황해도에서 구례군 토지면 반곡마을로 이거한  걸로 추정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난을 피하여  택룡(澤龍 16世)이  다시 곡성군 죽곡면 반송마을로  가솔을 데리고
이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곡성문중)

구례에  있는 복량 (福良 14世)과 극창 (克昌 15世)의 묘를  곡성반송 (곡성문중 도선산)으로 이장하여 곡성 
문중을 완성하였다. (2005년 5월)

이제 지평공파 곡성문중은 곡성 반송을 집성촌으로 하고  주로 광주와 서울 등지로 후손들이 이거하여 번성해
나가고 있다.

곡성문중의 큰 집은 복성(福成 14세)으로 황해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곡성문중 항렬자는  장성문중 항렬자에 따르고 있다.

♡ 곡성문중 관직 (官職)
* 분 (9세)  판관  원종3등 공신 (세조)
* 자환 (10세)   진사(단종)   4녀가 이충무공의 고조모
* 석 (11세)  장사랑
*  택룡 (16세)  동몽교관
*  상성 (18세 1574~1657) 수 가의대부 호군 (壽嘉義大夫護軍)
*  경묵 (22세 1750~1822)  수 통정대부 부호군 (壽通政大夫副護軍)
*  계묵 (22세 1821~1904)  수 통정대부 부호군 (壽通政大夫副護軍)
*  봉진 (도진 24세 1860~1895)  동학혁명 의병장
*  영진 (24세 1862~1933)  참봉 (參奉)
**  가의대부 종2품,  통정대부 정3품,  호군 정4품,  부호군  종4품.

  淸谷 奇宇德 (德文  바오로~곡성)



기회근 18-05-07 12:21
 
눈에 보이는 이상한 점 몇가지 질문드립니다.

1) 14세 복량께서 기묘사화후에 황해도에서 전라도 구례로 큰집을 따라 이거했다고 하셨는데 14세 복량과 15세 덕성군과는 15촌사이 입니다.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지만 당내인 8촌이 넘어가고 고봉선생이 퇴계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정무공후손이 소종을 받드는 집이 여나문 집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4촌-6촌간에도 소종이 많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인데 15촌간이라면 크게 왕래가 없다고 봐야지요. 9세 분께서 세조가 왕위찬탈하면서 대부분의 관료가문들에게 내린 원종3등공신을 받았고 손녀가 이순신 장군의 고조모이시고 이순신 가문은 서울살다가 아산으로 이거한 기록으로 보아 황해도와는 관계없는 서울사시던 집안입니다. 그러나 기묘사화와는 아무런 관련을 찾을수 없습니다. 더구나 원과 진 할아버지는 장성으로 이거했는데 복량께서 전라도로 갔고 기묘사화 연루로 원과 진 할아버지를 연관되어 갔다면 장성으로 따라 가셨어야지 구례로 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2) 위에 올려주신 4분이 壽嘉義大夫護軍 등으로 족보 기록을 보이셨는데 가의대부는 종2품 호군은 정4품이라는 기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종2품은 군을 예로 들면 3성장군 중장의 계급으로 군단장이고 호군은 정4품으로 직책이 3단계아래라 비유하자면 군단아래 3단계면 대대장정도인데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요? 조선시대에 실직으로 일할 때는 계급과 직책이 달라서 위아래 한단계식 정도는 다른 보직을 받는다는 행수법이 있다고는 들었어도 장수했다고 주는 실직도 아닌 명예직을 주면서 같은 직위와 직책을 주는 것이 아나라 이렇게 2-3단계의 직위와 직책이 다른 경우가 가능한 것인지요?

3) 14세 복량께서 기묘사화후에 구례로 이거했다는 전제하에 지금 곡성문중의 평균후손은 25세 연衍 입니다. 반면 15세 원 할아버지 후손인 장성은 29세 서舒 이고 광주는 진 할아버지 후손이 28세 석錫 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낙남한 다른 집안과 거의 100년의 후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중간에 2-3대의 누락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혹시 가지신 자료가 있으신지요?
기덕문 18-05-09 14:25
 
기회근 종친의 댓글에  답글입니다.

(1) 15촌간은  한  동네에서도  나옵니다.

(2) 황해도는  죽보에  근거한 것이나 추정입니다.

(3) 移居  연대가  기묘사화  후  라는  뜻입니다.

(4) 관직은  족보에 의한  것으로  이상이  없습니다. (행수법 참고)

(5) 작은 집은  큰 집과  항렬  차이가  생깁니다.

(6) 족보 누락  예상은  너무  나간  상상이며,  곡성문중은  질서  있게  잘  운영  관리되고  있습니다.

♡ 결론 :  ' 큰 집 (중평~장성 광주)을 따라' 를 삭제하여  오해의  소지를  불식하겠습니다.  그런데  코멘트(댓글)가  달린 

원글은 수정할 수  없다고 나오니  난감합니다.  善意로  쓴  글인데  심려를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淸谷 奇宇德 (德文)
기주형 18-07-11 10:41
 
우리는  수가  적어 문중을 따지기 전에 만나면 반갑습니다. 저는 화순 춘양 출신인데 과거 곡성 일가 기대웅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작고하셨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이 모시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이 기회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최영희장군의 비서를 하셨으며, 광업진흥공사에서 중역으로 근무하셨고 따뜻하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기덕문 18-07-12 17:36
 
기주형  종친의  글에 공감하고  감사합니다.  곡성문중의  뿌리를  후손들에게  알리려는  뜻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족보를 보면  알 수  있으나  쉽게  정리한  것뿐입니다.  前에  전남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故 기세풍  님이  민주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곡성문중  일가는  정말로  열심히  뛰었습니다.(화순 곡성  同선거구)  그리고 당선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고  뿌듯했던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회  입성은  못했습니다).  이게  행주기씨라는  씨족동질감  때문이  아닐까요?    회상해  주신  한 마디가  너무  감동입니다.  奇가라면  그냥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淸谷  奇宇德 (德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