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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1 01:39
노사집(蘆沙集)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244  

조선 후기의 학자 기정진의 시문집.
문집 28권 답문유편 15권 부록 2권 으로 구성된 목판본이다.
 
1882(고종 19) 제자들이 문집 22권을 편집하고 1890년 <답문유편> 15권을 완성하여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그뒤 1902년 목판본으로 중간되었다. 이 중간본은 초간본의 체계와 거의 같으며
<답문유편>에 정의림의 발문이 있다. 이 문집은 시문등 문예 위주로 편집된 대개의 문집류와 달리
경학(經學) 내지 성명(性命) 이기(理氣)에 관한 철학사상으로 채워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내용은 문집 권1, 2는 시, 권 3은 상소, 사장(辭狀) 책(策) 권4~15는 편지 권16은 잡저 권17~20은
서문 권21~23은 기 권24는 발문 권25는 잠(箴) 축문 제문 권26은 비 묘비명 권27은 묘표 권28은
전(傳) 행장 유사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답문유편 권1~3은 논도체(論道體)로 권1 총론 권2 성명 권3 심성정(心性情) 형기신리(形氣神理)
귀신명수(鬼神命數) 권4 ,5는 논학(論學)으로 권6 소학 대학 권7 논어 권8 맹자 중용 권9 시 서 역
춘추 예기 권10, 11은 논선유서(論先儒書)로 주자 정자 장자 주자 및 여러 유학자. 권12~14는
논례로 통례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방례 권15는 논사 훈문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집 28권 중 12권을 차지하고 있는 푠지의 대부분은 그가 문인들과 주고받은 성리학적 질문에
관한 것이다. 문집 중의 서 잡저와 답문유편은 그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특히 잡저 중의 납량사의와 외필은 그의 이(理)에 대한 철학사상의 핵심적인 것이다.
잡저 속의 논의에서 그는 우주만물의 생성변화를 이와 기로 설명하는 이기철학의 이기이원관을
국복하고 유리논적(唯理論的)인 이일분수(理一分殊)의 논리체계를 정립하여 자신의 이의 철학의
기틀을 세우고 있다. 외필에서는 이를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을 생성 변화하게 하는 근원적 실재라고
보았다. 또 납량사의 에서는 태극(太極) 일리(一理)의 현현(顯現)인 현상계를 설명함에 있어
이기철학에서와 같이 기의 동정운행에 의하여 현상계의 차별이 생긴다고 보는 관점을 거부하고
기의 발동과 운행은 오직 이의 명령이나 시킴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또 양이 움직이고 음이 고정하는
것은 한결같이 하늘의 명령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며 움직이고 안 움직이고 하는 것이 기(기(氣))라면
움직이게 하고 안하게 하는 것이 이(理)라고 하였다.
외필에서도 기는 이에 순종하여 발동하는 것이니 기의 발동은 곧 이의 발동이며 기는 이의 명령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니 기의 실행은 곧 이의 실행이라고 주장하였다.
잡저의 정자설은 태극도설 중의 정(定)자에 대한 해석이며 우기는 사단칠정을 논한 것이고
이통설은 이기 및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에 관한 논의 이다.
그의 이존무대(理尊無對)의 이기관은 이는 시키는 자(命物者)요, 기는 시킴을 받는 자(被命者)이므로
그 지위가 평등할 수 없다 고 본 이황의 입장과 일면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황이 이를 기의 우위에 두면서도 그 기능면에 있어서는 이도 발동하고 기도 발동한다는
이른바 이기호발(理氣互發)을 주장한 데 비하여 그는 기의 발동은 오직 이가 유행하는 손발이나
이 속의 일이라고 봄으로써 기의 독립적인 기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기호발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황의 이발을 옹호한 반면 이이의 기발을 비판하였다.
그의 이함만수(理涵萬殊)의 심성론 또한 이일분수의 논리와 이존무대의 이기관에 근거한 우주구성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장횡거(張橫渠) 이래 정자 주자 이황 이이와 같은 이기철학자들은 마음은
이 그대로의 성과 이와 기의 합동으로 일어나는 정을 통합한다고 보았으며 인성을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으로 양분하여 본연의 성은 순수한 그대로의 성이요 기질의 성은 기의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잡다함에 따라서 달라지는 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기이원관에 의하여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을 구분하는 것을 반대하고 양자를
일의일과 분수의 관계로 이해하여 이의 유행인 기질의 성 속에서 본연의 성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의 관계를 본원(本源)의 일리(一理)와 분수의 만리(萬理)의
관계로 보고 이의 하나로서의 본연의 성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순선(純善)한 정(情)인 사단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칠정을 모두 이 속의 일로 보고 사단을 이발, 칠정을 기발이라고
보는 이기호발설을 반대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그 묘맥(苗脈)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모두 이의 유행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인심을 기발로 도심을 이발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호락논쟁(湖洛論爭)의 중심과제가 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와 심체선악(心體善惡)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이일분수의 논리에 의하여 이해하였다. 호락논쟁은 권상하 문하의 한원진과
이간 사이의 왕복토론에서 발단된 것인데 한원진의 설을 지지하는 호론에서는 인성과 물성은
다르며 아직 발동하지 않은 심체에 선악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이간을 지지하는 낙론에서는
인성과 물성은 같으며 아직 발동하지 않은 심체는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호락논자들의 인물성동이에 대하여 만물은 그 근원을 같이하므로 이의 본연에서 보면 인성과
물성의 차이가 없지만 각 개체에 주어진 분수의 이에는 편전(扁全)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고 하여
그 논쟁을 매듭지었다.
그의 학문은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거나 영남학파나 기호학파니 하는 연원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周) 장(張) 정 주(朱) 4자(子)의 서를 읽고 스스로 궁리와 사색에 의하여 완성된 것으로서
이 문집 속에 체계화되어 있다. 이 문집은 이황 이이 이후 300년간이나 계속된 이른바 주리 주기의
논쟁을 극복하고 이일분수의 논리에 의하여 독창적인 이의 철학체계를 수립한 저자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크다. 1976년 아성문화사에서 노사선생문집으로
198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기정진전집으로 1983년 보경문화사에서 노사선생문집으로 영인 간행되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안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