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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1 01:27
백석헌유집(栢石軒遺集)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932  

조선 말기의 문신 기양연(奇陽衍)의 시문집. 2권 1책 석인본. 1975년 현손자 기준서(奇駿舒)
기정서(奇正舒) 안종선(安鍾宣)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권용현(權龍鉉)의 서문과 권말에 안종선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21수, 편지 54편, 잡저 6편,
권2에 서문 5편, 기 3편, 발문 1편, 제문 5편, 묘갈명 1편, 행장 4편,
부록으로는 승정원일기초록(承政院日記抄錄) 행장 묘갈명 묘표 만장 제문 백석헌기(栢石軒記)
농소기(農巢記) 각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편지의 상친정(上親庭)은 1853년 4월 17일부터 1874년 까지 집에 보낸 편지로
안부 및 교우와 조정의 사정 국내외 정세 등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삼정책(三政策)은 당시 삼정이 문란하여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내외의 정세가 어렵게 되자
이에 대한 대책을 밝힌 것으로 성심(聖心)을 바로잡을 것, 수령을 바로 임명할 것, 관리를 다스려
무위도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용학서언심언성책(庸學序言心言性策)에서는 중용의 솔성(率性)과 대학의 정심(正心)의 관계를
농하였는데 중용은 전심(傳心) 대학은 복성(復性)의 글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척양사론(斥洋邪論)은 당시 서양세력이 문호개방을 요구해오는 데 대한 논설로
노불양묵(老佛楊墨)의 이단보다 심한 무리이기 때문에 정학을 밝혀 척사의 근본을 세울 것을
촉구하였다.
이밖에 계유일기(癸酉日記)는 1873년 2월 3일부터 5월 10일 까지 회시(會試)의 시관으로 참가하였던
전후사실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 과거시행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참고자료가 된다.
전주대학교 도서관 및 전라남도 장성의 변시연 등이 소장하고 있다…….김성항

추기 :
1975년 문집이 간행되기 이전 아들 보산(普山) 기우승(奇宇承)에 의해 {백석헌문집}이
 편집되었다. 모두 4권 2책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는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후 몇몇 일가(一家)가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기양연의 유문을 가져가 반환하지 않은 까닭으로
대부분이 흩어졌고 더 이상 미루기 어려워 당시 간추린 문집이 간행되었다.
문집이 간행된 이후 보산 기우승의 필사본 {백석헌문집} 1책이 발견되었고,
1999년 국사편찬위원회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장성 행주기씨 종가 고문서 조사에서 문집에
수록되지 못한 100여건의 새로운 유문이 발견되어 다시금 문집 간행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과정 연구자료로 {백석헌(柏石軒) 기양연(奇陽衍)
간찰자료(簡札資料)} 300여 쪽을 별도로 영인(影印)한바 있다.
다만 중요한 문서들은 당시 차용(借用)해간 일가들이 보관하며 반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진촬영에도 응하지 않는 까닭에 재간행이 늦어지고 있다.
기양연의 유문이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까닭은 그가 홍문관의 관원으로서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국왕을 모셨을뿐 아니라 또한 사관으로서 많은 사초를 남겼고 열강의 침탈에 대항하는 외교문서를
직접 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셔먼호사건 갑신정변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최근 승정원일기 등과 대조한 결과 상당한 차이가 발견되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기왕에 간행된 {백석헌유집}은 각급 국공립도서관과 각 국립대학교 도서관 및 사립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5세손 기호철(奇浩喆)